대학로 연극 무대에 천호선 정의당 대표가 연극 배우로 데뷔했다. 작품은 76극단의 '관객모독'(페터 한트케 작, 기국서 연출)이다.
'이것은 연극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이미 일어났던 사건이 반복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는 지금이 있을 뿐입니다. 현재가 있을 뿐입니다. 오직 한 번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보았던 것을 볼 수 없고, 들었던 것을 들을 수 없습니다.' (극 대사 중에서)
내용도 없고 형식도 없이 오로지 언어 자체, 언어의 현란함과 언어의 가능성만 있다. 배우들의 대사에 의해 극 전체가 전개된다. 관객들은 도무지 해괴하고 생소하기만 하다. 이 작품의 배우가 되려면 일단 말을 잘해야 한다. 그런면에서 천호선대표는 마이크 앞에 능숙하고, 대중들 앞에 서본 경험이 많아서 사전 오디션 없이 배우로 등장하기에는 아주 매력적인 작품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의 데뷔는 어떠 했을까. 그의 극중 역할은 배우들에게 연기 지도를 하는 무대감독(연출) 역이다.
배우 네명은 각자 자신들의 대사를 관객들에게 전달 하던 중이었는데 한 배우가 변증법에 대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다가 단절 되고 만다. 대사가 꼬이고 변, 변증, 변법, 답답할 정도로 대사가 관객에게 전달 되지 않는다. 이 때 신인 배우 천호선이 등장한다.
천호선 : 좀 잘하란 말이예요.
배우1: 어떻게 잘해?
천호선: 그냥 잘 하라는거죠.
배우2: 그래. 어떻게 하는게 잘 하는건데?
천호선: 그건 배우 하시는 분들이 잘 아실거 아녜요.
배우3: 어떻게 하는건지 보여줘봐.
천호선: 어휴 답답~
이후 연출가인 기국서 선생의 신인배우에 대한 소개가 있고, 10여분 정도 관객들과 묻고 답하는 시간이 주어진다. 그 중 나왔던 질문을 소개해 본다.
관객1: 현정권의 권력은 무소불위다. 참여정부 때를 생각하면 권력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말해 달라.
천호선: 분명히 권력은 있었다.그런데 그 권력을 지금처럼 행하지는 않았다. 참여정부는 대통령께서도 그랬지만 누구나 평등했다. 정말 열심히 일만 할 줄 알았지 권력을 행한다는 생각은 못했다.
관객2: 은평주민이다. 지난번 재선거 때 수원에서 출마하는 바람에 배심감도 갖고 있다. 다음에는 은평으로 출마 하는가?
천호선: 지금은 단정적으로 말 못한다. 나중에 여론조사라도 해보고 판단해 보겠다.
신인배우 천호선은 순수한 내면이 엿보였다. 연극이라는 다소 거칠면서도 흡입력있는 무대에서조차 자신을 숨길 줄 몰랐고, 관객들의 질문에는 정성스러웠다. 관객을 모독할 줄 알았는데 관객들은 진실된 그의 모습에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내기에 충분했다.
이제 76극단 얘기 좀 해 보자. 나는 91년 즈음에 76극단 후원회원 이었던 적이 있다. 산울림, 연우무대, 민중극단 등 그 때만해도 꽤나 알려진 극단이 더러 있었고, 76극단은 작품의 신선함으로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그 작품이 바로 '관객모독'이다. 기국서 선생이 연출이었고, 지금처럼 기주봉, 정재진 배우가 열연했다. 그 때가 이십여년이 한참 지난 옛 추억인데 그 분들이 지금도 이렇게 무대에 선다. 이 작품을 통해서 많은 배우들이 스타가 되어 브라운관, 스크린으로 떠났고,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한동안은 뮤지컬 극작가로서 몇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더욱 놀랄만한 것은 연출가인 기국서 선생이 정의당 당원이시란다. 천호선 대표의 입당 권유로 당원이 되셨다는데 반가움이 크다. 연극이 끝나고 어느 분이 영종도에서 잡아왔다는 회와 치킨 몇마리에 막걸리를 내세워 뒤풀이 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천호선 대표의 문화에 대한 소양을 엿들을 수 있었는데 학창 시절 기억해 내는 극단과 작품들 얘기만으로도 그의 연극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배우 기주봉님은 2년전 성북시민광장이 노무현대통령님 탈상제를 지낸 적이 있는데 이 때 자리를 함께 하면서 거듭 고맙다는 말을 했는데, 이래저래 인연인가보다.
서울연극협회가 요즘 2015 서울연극제 때문에 난관에 부딪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권영빈위원장)가 대관을 불허 함으로서 서울연극제를 올릴 무대가 없기 때문이다. 연극인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난관을 해쳐나가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는데 배우이면서 정의당 당원인 김정은님이 천호선 대표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님은 기국서선생이 정의당 당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반가운 것은 반가운 것이고, 정의당 국회의원 분들이 서울 연극제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내막을 알고 도와달라고 천호선 대표에게 매달린다. 정진후 의원이 관심을 가져주어야 할테고, 추이를 보아가며 시민 사회의 연대가 필요치 않을까.
11월의 마지막 화요일 저녁이었다. 대학로 플라타너스 잎들이 더는 매달려 있지 못하고 누구의 발길에라도 추억을 주고자 한 날이었다. 천호선 대표의 배우 데뷔를 축하하고 정의당이 문화 정당으로 거듭 발전 하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