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와 유시민, 이명박 정부를 말하다
[이정희-유시민 대담①] 시국을 보는 눈
이정무 기자 jmlee@vop.co.kr ㅣ 입력 2011-01-05 19:56:14 / 수정 2011-01-05 20:14:13
“커피 한 잔 주세요.” 대담 장소인 <민중의소리> 회의실에 들어선 유시민 국민참여당 정책연구원장의 일성이다. 미리 마련해 놓은 물과 과일음료가 무색하다.
“우리 땐 말이지, 커피도 못 먹게 했어요.” 7~80년대 운동권 내에서 ‘왜색양풍(倭色洋風)’ 배격 차원에서 커피를 금기시했던 습관을 말하는 것이다. “난 어디 가나 기존의 질서에 반기를 들었는데, 당연히 커피도 마셨지요. 하하.” 그 땐 커피를 안 마셨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도 ‘따라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그러나 빙그레 웃을 뿐 별 말이 없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정책연구원장과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가 대담 장소 앞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양지웅 기자
유시민, “정부수립 이후에 이런 역행은 처음”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와 유시민 국민참여당 정책연구원장이 만났다. 한 사람은 정치 신인 타이틀을 벗어던지자마자 진보정당의 대표가 된 차세대의 선두 주자고, 다른 한 사람은 야권 대선 후보들 중에서 1,2위를 다투는 사람이다. 그 동안의 정치와는 ‘뭔가 다른 정치’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가 그들에게는 있다.
회의나 집회에서 자주 마주치는 두 사람이지만, 사실 긴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거의 없었다. 2010년 아직 날씨가 무더울 때 있었다고 전해지는 한 차례의 ‘데이트’에서 유 원장이 이 대표에게 밥을 산 적은 있다. 이 때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번이 두 번째다.
대담은 시국 현안에서 각자의 정치관으로,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연대’ 문제로 넘어갔다. 사회는 거의 있으나마나였다. 두 사람은 다른 자리에서는 하기 어려웠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어떻게 지내셨어요?
유:저는 대표님에 비하면 따사롭게 살았죠. 대표님이 추운 데 지역 돌아다니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지요. 먼저 말씀해 주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지역에 다녀보면 많은 분들이 이제 (이명박 정부에 대한) 판단은 끝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저도 국회에 들어온 지 이제 3년이 되어가는 데, 때로는 희망도 있었지만 이번에 날치기를 겪어보니까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요. 이 정권은 무지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해요. 정권에 대해서 어떤 기대를 접는 수준을 넘어서 (이 정권이) 역사적으로 굉장한 상처를 남길 것 같아요.
유:당혹스럽죠. 정치하는 사람들도 사실 당혹스럽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도, 멀리서 미디어를 통해서 지켜보는 국민들도 당혹스럽다고 느낄 겁니다. 솔직히 다수 여당이 (예산안이나 법안을) 강행처리하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에요. 지난 정부 때에도 자주 있지는 않았지만 어쩌다가는 있었어요.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고. 익숙한 풍경인데 왜 당혹스러울까? 저는 이런 생각을 해요. 해방되고 정부수립 이후에 우리 역사는 일정한 방향성이 있었어요. 전두환은 박정희처럼 군사독재였지만, 박정희보다 더 무능했어요. 노태우 정부를 거쳐 김영삼 정권 때 3분의 1의 정권교체가 됩니다. 김대중 정권 때는 3분의2, 노무현 정권 때 비로소 완전한 정권교체가 됩니다. 인권도 경제도, 남북관계도 다 한 방향으로 줄곧 왔어요.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뒤로 돌아갑니다. 정부수립 이후에 처음 있는, 이런 역행은 처음 겪어보는 겁니다. 그래서 당혹스러운 게 아닐까? 화는 나지만 표현할 길이 없고, 표현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래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혹스러운 게 아닐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굉장히 긴 시간과 노력을 통해 만들어낸 작은 진전이랄까요? 인권, 민주주의 이런 것들이 하루아침에 완전히 뒤바뀌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됩니다. 정부의 한 마디로 인해 되살아난 국민을 상대로 한 물리력의 사용, 그것을 다시 합법화하려는 한나라당을 보면서, 다시 이걸 바꾸려면 또 얼마만한 노력이 필요할까? 이런 탄식을 하게 돼요.
유:저는 그렇게까지는 생각 안합니다. (제가) 20대 때 마산수출지역, YH사태, 청계노조 사건들을 보며 이런 노동권이나 사회정의의 문제에서 진전이 없는 것은 정치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민주주의가 없기 때문에, 다른 모든 문제들이 풀려나갈 메커니즘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민주주의가 되면, 다른 ‘깊은 문제’들도 결국 조명을 받아서 이성과 정의에 대한 우리의 직관에 부합하는 쪽으로 풀려나가리라 생각을 했어요. 민주화 이후에 제도와 법률은 바뀌었습니다. 불의가 공개적으로 저질러지거나, 항변할 곳조차 없는 상황에서는 벗어났지요. 지난 정부 때도 여전히 부족한 것도 많고 완결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역행을 하지만, 그래도 제도를 허무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아주 비관적이지는 않은 겁니다. 인권위가 사실상 작동이 중지되었지만, 그래도 인권위가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미네르바’를 잡아가지만, 이 ‘미네르바’를 잡을 때 전기통신기본법을 적용하는 건 그것 말고는 적용할 법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거든요. 물론 제도가 있어도 사람이 운용하기 때문에 (나쁜 사람들이 운용하면) 무용지물이 됩니다. 그래도 이것은 마음만 먹으면, 국민들이 변화의 계기만 잡으면, 짧은 시간에 복원이 가능합니다. 제도가 무너지지 않았거든요. 우리 역사에서 처음 나타난 역행이 사람의 역행이기 때문에, 국민이 변화의 계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새해라서 그런가요?(웃음) 저는 희망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만들어진 제도를 다시 살릴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제도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분명히 대단한 성과지만 누가 운용하느냐에 따라 약간의 지체는 있습니다. (다시)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그게 자동으로 살아나지는 않을 겁니다. 사회의 영향을 받으니까요. 가령 이런 것들, 피의자의 권리, 피해자의 권리, 사형제 폐지에 대한 공감... 그러나 굉장히 쉽게 반대되는 법이 만들어지고, 전자발찌 화학적 거세가 단 한 달도 안 돼서 통과되는 것을 보면 법이나 제도에 사회의 영향이 얼마나 강한지 느끼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국회에서) 반대 토론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 그럴 때 심정은 ‘아 이제 이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구나!’하는 거예요. 역사적 책임감으로 반대 토론을 남기는 건데, 이게 다른 말로 하면 통과시켜 줬다는 것이거든요.
이정희, “다수결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유:실제로 국회 안에 계시기 때문에 더 힘들 겁니다. 국회 밖에 있으면 느낌이 달라요. 16대 보궐선거로 국회에 들어가서 17대 까지 (국회의원을) 했는데 그 때 ‘국회의원은 99%의 체력 1%의 지력으로 한다’고 농담도 하곤 했습니다. 더구나 여성이신데, 마음과 육체적으로 얼마나 힘들까 생각합니다.
이:국회에서 (날치기가) 되풀이되는 모습을 보면서 ‘민주주의가 뭘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충돌의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다수결의 원칙, 이것이 민주주의라는 겁니다. 다수결은 수의 원칙인데, 그 근간이 뭐냐? 민주주의의 원칙으로서 다수결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하냐? 국민의 의사를 파악하고, 도출해 낼 수 있는 사려 깊은 헌법적 가치가 필요한 것 아니냐? 나는, 우리 당은 그것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들이지요.
유:약간의 역지사지는 필요합니다. 지난 정부에서 사학법 개정 때 논란 끝에 누더기처럼 된 사학법을 직권 상정했습니다. 다수 의석을 가지고 딱 한 번 해봤습니다. 국보법도 민주노동당까지 합치면 162석인데 통과를 못했습니다. 힘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호주제 폐지에서도 한나라당이 흔쾌하게 찬성한 것은 아니지요. 사학법이나 국보법 논의할 때 그 당시에 한나라당 의원과 국민들의 생각은 어떨까를 생각해봤습니다. 그런 국민, 그런 정치인이 있는 게 현실이니까요. 저는 정치하는 동안, 그런 심정은 잘 못 헤아렸습니다. 옳은 일을 하더라도 이해해가면서 하는 것과, 그냥 내가 하는 일은 옳다고 선을 그어놓고 하는 것은 다른데, 후자가 컸습니다. 물론 사회에서 국론통일이라는 것은 좋은 게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인데 여야를 막론하고 부족했습니다. 지금 상황이 너무 ‘포악’해서(웃음) 이런 국면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맞는가도 생각되지만, 전반적으로 경쟁상대를 라이벌이 아닌 적으로 보는 문화는 뿌리가 깊습니다.
여기까지는 둘 다 준비된 정답에 가까웠다.
'자유롭고 싶어서 싸우는’ 유시민, ‘싸우지 않음이 고통스러운’ 이정희
[이정희-유시민 대담②] 우리는 왜 정치를 하나
이정무 기자 jmlee@vop.co.kr ㅣ 입력 2011-01-05 19:58:25 / 수정 2011-01-05 20:14:13
“정치란 무엇인가?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어떤 직업을 갖고 있더라도 이런 질문은 한 번 씩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치인처럼 ‘욕’을 많이 먹는 직업은 드물다. 굳이 나눠보자면 이정희 대표는 최소한 같은 편으로부터는 욕을 별반 먹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유시민 원장은 같은 편으로부터 듣는 욕도 상당하다. 물론 강력한 팬 층이 있지만.
유:연예인들에게는 애로사항이 있답니다. 호프집에서 술 먹는데 옆 자리에서 욕하면서 시비를 건다고 합시다. 여기에 맞대응하면 신문에 나거든요.(웃음) 정치에도 있습니다. 사실 (정치가) 돈이 많이 벌리는 직업도 아니고, 국회의원 되면 오라는 데는 많지만 가고 나면 욕도 많이 합니다. 조사해보면 신뢰도의 꼴찌가 검찰, 국회, 대통령이라는데, 이건 길가다 만난 사람보다 더 믿을 수 없다는 것이거든요. (저는) 정치를 하면서 항상 ‘내가 왜 정치를 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아직도 결론이 잘 안 나서 이 대표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웃음)
이:2008년 3월2일. 민주노동당 입당원서를 쓰면서 그때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왜 정치를 할까? 글쎄요... 그래도 다행인건요,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라고 하면 그래도 ‘거짓말은 안 하겠구나’ 그런 믿음이 있으세요.(웃음) 그런 게 귀한 거지요. 흔히 국회의원들 보면서 얄밉다는 생각을 했는데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라고 하면 다르게 보시거든요. 만약 다른 정당이었으면? 나 말고도 할 사람이 많을 텐데... 굳이 나까지? (웃음) (정치를 하게 된) 더 직접적인 배경은 이명박 정부의 등장이 아닐까요? 10년 동안 노력했던 결과물이 중단됐다는 압박감 같은 게 작동한 것 같아요. 정치를 한다는 건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지만, 하면서 점점 느끼는 건 국민들에게 믿을 수 있는 사람, 거짓말 안하는 사람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열망은 굉장히 커서 언젠가는 크게 폭발할 것이라 믿습니다.
국민참여당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 원장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정치가 매력적으로 보일 때
유:저는 정치를 하다말다 했는데, 거슬러 가면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 때 김대중 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그때는 20대라 매일 심부름만 했습니다. 그 선거 끝나고 구로구청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일었는데, 거길 가서 투표함 붙잡고 울었습니다. 그날 (진 것이) 믿을 수가 없고, 서럽고 해서 밤새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선배들이 자꾸 이 당이 무너지면 도저히 기댈 데가 없어지니깐 다 입당한다고 했습니다. 평민당인데, 이해찬 의원이 당선되서 보좌관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이 대표께서 관악을로 가셨는데, 제가 관악을에서 지역신문도 만들고 교육센터 만들고, 사진전 열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91년 지방선거에서 시의원 공천을 받았는데, 당내 문제 때문에 포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공부하러 갔습니다. 2002년에는 민주당 후보 경선 때 노무현 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했고, 후보가 확정되고 나서 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민주당내에서 후보 흔들기가 시작되어서) 화가 나서 다시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노무현을 너무 무시하는 겁니다. 좋은 분인데, ‘대학 안 나왔다고 그런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정치였는데, 보궐선거 하고 장관되고 그렇게 왔습니다. 지난 정부가 끝날 무렵에 생각해봤습니다. 자연에는 진공이 없다고 하죠? 권력도 진공을 허용 안 합니다. 국가(권력)는 필연적으로 있게 되어 있는데, 누군가는 이걸로 선이나 악을 행할 수 있습니다. 정당한 권력이 없으면 국가가 나쁜 짓을 하게 됩니다.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하거나 결국 국가의 작동방식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 안 되더라고요, 누군가가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에 도달하니까 저 같은 사람이 그냥 책만 쓰거나 강의 다니면서 사는 게 비겁해 보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 한나라당을 막아야 한다, 이렇게 현안문제에서 논리로 힘으로 수로 싸울 때는 못 느꼈습니다. 그 때는 (정치가) 매력적일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하면 국가가 악을 덜 저지르게 할까? 국가를 통해 선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생각이 그런 거였구나’하고 느끼니까 정치가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기자는 이 때 처음으로 끼어들었다. “정권을 잡아야 매력이 더 강해지겠는걸요?” 모두 웃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이정희 대표의 말은 좀 무거웠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이:저에게 정치란 고통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할까요? 사람들에게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고, 혹은 국가가 그들을 억눌렀을 때, 그들의 표정... 그 얼굴들이 가슴속에 박혀 안 잊혀요. 국가는 그걸 할 수 있는데, 바꿀 수 있는데, 왜 안할까? 내가 하나라도 할 수 있다면 하는 게 맞지 않나? 2008년 쌍용차 파업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노사 간의) 대화를 주선하는 역할을 정부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안할까... 유 원장님이 정치를 매력적으로 생각하신다는 말씀이 저는 참 좋은데요... 참 좋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이 (정치를 통해) 바뀌는 것을 보면, 풀어지는 뭐랄까요, 그런 순간, 그런 느낌을 만들고 싶습니다. 정치에서 매력적인 게 더 많았으면 좋겠는데, 저는 고통에 대한 책임감이 더 큰 것 같아요.
유:정치를 시작할 때 이런 상상을 했습니다. 억눌리고 빼앗긴 사람들, 자유가 속박당하는 사람들이 억눌림이 벗어났을 때 드는 느낌 같은 것. 군대에서 제대하는 날의 해방감 같은 것을 국민에게 주어야 한다. 그런데 정치를 하면서는 그런 것보다 좀 추상적인 것을 미워했습니다. 지역구도 정치, 이런 게 너무 미웠습니다. 정권교체 이전에 정치 입문한 사람들에게는 정치가 투쟁의 연장에 가까웠습니다. 좀 다르게 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암튼 그랬습니다. 안 그런 적도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이것저것 했는데, 그 이후 대구에서 선거를 하는데, 갑자기 길을 가던 쌍둥이 엄마가 ‘너무 고맙다’고 손을 잡아요. 출산도우미 보내줬다고 그렇게 고마워하는 겁니다. 그 때까지는 잘 몰랐습니다. 만약 장관할 때 그런 생각을 더 했다면 더 잘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웃음) 저는 이 대표님 같은 느낌으로 정치하는 분은 처음 봐요.
이:진보에 대한 제 생각이 무엇인가와도 연관이 있어요. 저는 현실 문제를 가장 잘 푸는 것이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조건을 달지 않는’, ‘(복지를 베풀어) 주셔서 고맙습니다.’가 아니라 ‘내 것을 받았다’는 생각. 우리의 공동체는 그런 것들을 보장하는 데서 발전합니다. 그런 논리를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진보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견해를 가지신 분들, 이를테면 한나라당이나 정부에 대해서도 저는 많이 싸우고 싶지 않아요. 설득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일해 왔던 법정이라는 공간에서도 저는 충분히 설득을 통해 성공해왔고요. 87년 헌법에서 가장 잘 되었다는 것이 37조거든요. 국민의 자유와...(웃음)
헌법 37조 ‘복창하기’
갑자기 웃은 이유는 두 사람이 37조를 ‘복창’했기 때문이다. 이정희 대표의 전직이 변호사이니 뭐 그럴 법도 하고, 유시민 원장의 저서 중에는 ‘후불제 민주주의’가 있으니 역시 그럴 만하다. 헌법 37조는 1항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이며, 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이다.
이:이 37조는 우리 헌법을 열린 헌법으로 만들어 놓은 겁니다. 상식과 논리에 기초해 진보를 일궈 나갈 수 있는 이유이거든요. 저는 사실 밉거나 싸우기보다 설득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기본적인 의무, 사회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 평화적으로 살 권리. 이런 건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 없이는 할 수 없는 것들이죠. 이번에 SSM규제법 하면서 민주노동당이 주장한 게 사실 헌법대로 하라는 거잖아요. 진보세력이 현실정치에 참여함으로써 국가권력을 국민의 통제 하에 놓는 선순환의 길이 이미 정립돼 있다고 봅니다.
유:한 토론회에서 진중권 선생이 저보고 ‘이 사람은 좌파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조금 좌파인데요’ 했지요.(웃음) 진보는 나아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디로 갈까를 생각해보면 여기에는 논리 이전에 사람마다 있는 나름의 직관과 감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헌법의 가치 중에 자유가 제일 좋습니다. 부당하게 간섭 받는 게 너무 싫어요.(웃음) 남에게 피해를 안 주는 범위에서 내 삶의 권리는 나에게 있다, 국가가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부르주아적 가치에 의한 자유라도 이것 역시 자유거든요.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너무 가난하면 자유가 없습니다. 민주노동당이 물질적 복지를 위해 노력하는 것 역시 저는 자유를 향한 노력이라고 보는 겁니다. 진보가 과학 기술에 대해 너그러운 것도 마찬가지지요. 저는 ‘리버럴’입니다. 개인의 자유가 가장 중요해요. 리버럴들은 내가 뭘 위해서 세상에 와 있다고 생각 안 해요. 그냥 세상에 와 있다, 기왕 온 거니까 잘 살아야지, 내 의지대로 사는 게 가장 좋은 것이다, 내가 (남에게) 피해를 안 주는데 남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싫다, 이런 걸 막는다면 무너뜨리자 이렇게 갑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돌을 던진 게 이런 논리였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사람들은 다 나 같지는 않거든요. 비정규직이 그래요, 저는 정규직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지만, 그래도 책 쓰고 강연하고 이럭저럭 살거든요, 그런데 비정규직은 정규직이랑 똑같은 일을 하는 데 같은 대우를 못 받는다는 말입니다. 보고 있으면 너무 불편해요. 리버럴들은 자신의 일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이런 일이 있다 보니 ‘나 혼자 자유롭게 사는 게 맞냐’고 묻게 됩니다. 그래서 연대가 이루어집니다. 규범적으로 ‘연대’, 이런 게 아니라, 자유롭게 삶의 주체로 살아가고자 하는 데, ‘나쁜 사람들이 있고 공동체의 의무도 있지 않느냐’ 이렇게 연대가 발생합니다. 진보가 보편적 자기 규범에서 자기 행동의 원칙을 이끌어 낸다면 리버럴들은 거꾸로 합니다. 내 삶의 원칙에서 시작해서 보편적 규범으로 나가는 겁니다. 그래서 왜 (연대를) 하느냐고 물으면 ‘하고 싶어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결국 행동은 같을 수 있는 거지요. 하나의 일을 놓고 동기가 무엇인가는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미안해서 두고 못 보는’ 이런 마음들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말 한마디만 거들면 도움이 될 텐데 하는 생각. 이런 마음들이 모여서 여론을 형성한다고 봅니다. 가령,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할 때, 정규직 노동자들이 슬며시 가서 도와주는, 이런 모습을 이번에 현대차 비정규 파업에서 봤어요. 그런 마음들이 정말 고맙고... 정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어요. 정치는 사회를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이런 힘은 그럼 어디서 나오나?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온다. 사람들의 마음을 모을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 마음이 진실해야 한다. (이 쯤에서 한참 침묵이 흘렀다) 여기에서 굉장히 보수적인 분들도 한 단계를 뛰어넘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그런 계기들을 정치를 하면서 살려보고 싶습니다.
2시간을 예정하고 시작한 대담은 이쯤에서 벌써 1시간이 훌쩍 넘어갔다. 기자의 호기심은 두 사람이 어떻게 다를까하는 데 있었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자유는 소중한 것이다. 그 자유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놓고 이 대표와 유 원장 사이에는 분명히 거리가 있었다. 유 원장의 ‘자유’가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라면, 이 대표에게는 자신의 ‘자유’가 반드시 타인을 위해 쓰여 져야 한다는 소명 의식이 앞섰다. 유 원장이 ‘자유롭고 싶어서 싸우는 사람’이라면 이 대표는 ‘싸우지 않는 것이 고통스러워 싸우는 사람’이라고 할까? 물론 독자들은 다르게 느낄 수도 있었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두 사람의 정치에 대한 생각은 두 당의 존재처럼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엇갈렸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국민참여당 유시민 참여정책 원장이 대담을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자유롭고 싶어서 싸우는 사람’ ‘싸우지 않는 것이 고통스러워 싸우는 사람’
유:심상정 대표가 어떤 인터뷰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정치로 왔는데 정치가 뭔지 몰랐다. 멘토가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나도 멘토가 없었어요. 선배들이 많은 얘기를 해 주었지만 정치 처세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고, 나도 우습게 여겼습니다. 정치의 본질을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정치에 대해 깊이 생각을 못해본 겁니다. 유시민이 안티가 많다고 하는데, 이유가 있겠지요. 요즘 진보신당 분들이 막스 베버 세미나를 한다고 하는데, 저도 정치를 쉬는 동안에 막스 베버를 읽었어요. 거기 보니까 이렇게 나옵디다. 정치인의 자질에 세 가지가 있다는 겁니다. 대의에 헌신하는 열정, 결과에 대한 책임의식,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는 균형 감각. 저한테는 책임의식이 가장 부족했어요. 대통령이나 국회의장 하겠다는 욕심도 없었고, 노무현 대통령만 당선되면 (정치를) 그만하고 (집에) 가야지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게 책임성 있게 일을 하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근데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냥 한 거지 뭐.(웃음) 옳은 일을 했건 잘못된 일을 했건 사람들이 기대하고 요청하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막스 베버가 봤으면 정치인으로서 심각한 거지요.(웃음)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 게 자연스러운 거고 이게 나의 업보구나, 이젠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좀 더 길었다. 일단 이 쯤에서 줄이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기로 했다.
전태일과 노무현은 만날 수 있을까
[이정희-유시민 대담③] 진보대통합, 혹은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이정무 기자 jmlee@vop.co.kr ㅣ 입력 2011-01-05 19:59:22 / 수정 2011-01-05 20:14:13
대담의 세 번째 단락으로 넘어가자면 이른바 ‘진보대통합’이라는 의제에 대해 사전 설명이 필요하다. 진보대통합은 간단히 말해 진보진영의 정치 역량을 합치자는 문제제기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의견이 있다.
모든 의견을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간단히 말해 △원래 하나의 당이었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합쳐야 한다는 의견, △국민참여당까지 합쳐서 민노-진보-참여당이 뭉쳐서 민주당과 병립해야 한다는 의견, △민주당까지 포함하는 모든 정당이 합치자는 ‘빅텐트’론이 그것이다.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합쳐야 한다는 의견은 최소한 진보진영 안에서는 별달리 거론되고 있지 않다. 2000년 이후로 민주당과 별도로 진보정당이 ‘출현’하고 개혁당과 국민참여당이 ‘발생’한 데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합당해야 한다는 주장도 자연스레 받아들여진다. 원래 하나의 당이었지 않느냐는 것이다.
쟁점은 결국 국민참여당과 진보정당들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다. 대담은 이 부분에서 무척 예민해졌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저는 (우리가) 소금이라는 말, 잘 안 써요”
이:진보대통합을 말하기 전에 민주노동당에 국한해서 말씀드리면 우리는 아직 실제로 현실을 바꿔 본 경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이 필요한건 알지만, 소금이라는 건 알지만, 잘 안 찍어주시는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소금이라는 말 잘 안 써요. 소금은 많이 먹으면 짜잖아요.(웃음) 소금이 아니라 주류, 실제를 차지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는데, 그러려면 민주노동당이 하나의 주체로서 판을 흔들 수 있다는 걸 보여드려야 합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조금쯤은 보여드렸다고 생각합니다. 2012년 총선, 또 그 이후에는 더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사실 정책적인 측면에서는 이미 큰 변화가 있었다고 봅니다. 무상급식이나 SSM규제 같이 민주노동당이 주장했던 정책이 이미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정책 한 두 개만으로 민주노동당으로 표가 오진 않습니다. 그래서 정책을 넘어서서, 현실을 흔들고 싶고, 나라의 기틀을 새로 만들고 싶고... 이걸 통해 희망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2012년에는 보여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유:민주노동당이 10년이 넘어가니까 국민에게 익숙합니다. 우리는 ‘기성’정당 중의 하나라고 하는데(웃음), 여기에 가치평가까지 넣으면 ‘선배’정당이라 부릅니다. 참여당에 비해 활동가도 열 배가 넘고... 우리끼리 회의를 할 때면 항상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을 비교를 해요. 민주당하고 비교하기는 그러니까.(웃음) 그런데 두 당 모두 국민들이 많이 지지해주지는 않거든요. 왜 국민들이 많이 지지해 주지 않을까 늘 생각하는데, 이렇게 물어보면 ‘니들 하는 말이 옳다는 거 아는데...’ 해놓고는 표는 다른 데 찍어준단 말이지요.(웃음) 당신들 얘기가 옳은 것 같은데, 그 옳은 이야기를 실행할 힘이 없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참신하고, 아이디어 좋고, 사람들이 똑바로 살아왔고... 그래도 정치는 나라를 운영하는 건데 좀 부족하다고 보십니다. 민주노동당 보면 의원 5명밖에 없고, 참여당은 의원이 한 명도 없고... 능력이 부족하다고 보는 겁니다. 지방 선거만 해도 의원은 시켜주는 데, 단체장만 해도 잘 안 시켜주시는 겁니다.
이:그건 시간을 두고 싸워야 합니다. 울산에서는 이미 보여드렸다고 생각해요. 이제 4월이면 보궐선거가 있는데, (구청장 후보) 두 사람 모두 당선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또 광주, 전남에서는 상당한 변화가 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작은 변화의 흐름들이 큰 의미가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조직적으로, 또 경험적으로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정당에 비해 좀 느리기는 하지만 기초가 튼튼하게 쌓이고 있다고 봅니다. 이런 것들이 힘을 낼 것이냐? 그 점에서 저는 대단히 긍정적입니다. 민주노동당 앞으로 잘 나갈 거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웃음)
유:제가 조급한지 몰라도 너무 진도가 느린 건 아닌가요? 다른 좋은 당이 있어서 우리가 천천히 크는 동안, 누가 잡아도 나라 운영을 잘해주면 모르겠는데, 한나라당이 잡아서 역사가 50년 만에 뒤로 가는 걸 보면서 사람들이 당혹스러워 하는 판국인데, 민주노동당이 이렇게 (천천히) 커서 언제 해결하나,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빨리 성장해주면 좋을 텐데... 국민참여당도 창당한지 얼마 안 되고 하는데, 당원들은 벌써 다음 총선에서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거든요. 그러면 제가 그럽니다. ‘그거 정치적 사행심이야’ (웃음) ‘민주노동당 봐, 10년 넘게 해도 저 정돈데, 우리가 그러면 안 되지’ (웃음) 제 고민이... 참여당은 참 특이해요. (민주노동당과 달리) 국민참여당은 지역적, 사회적 기반이 없었습니다. 활동가 조직도 없었고, 이런 표현 써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마치 ‘난민단체’처럼 만들어진 당 이예요. ‘망국의 유민들이 의탁할 곳이 없어서 떠돌다가 자치국이라도 만들어보자.’ 이렇게 모인 것 비슷해요. 사실 국민참여당은 2002년에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02년 개혁당은) 아직 잘 갖춰지지는 않았지만 최초의 ‘진보 리버럴’의 당이었습니다. 민주노동당이 앞에서 온몸으로 충돌하면서 밀고나간 사람들이라면, 우린 그 정도로 절박하지는 않았던 사람들인데 그 뒤에 ‘노무현’이란 ‘상징’을 만나서 ‘왕국’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다 무너지고 이제는 받아 주는 데가 없으니까 창당을 한 셈입니다.
이쯤에서 대담 자리는 잠시 시끄러웠다. 당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유 원장이 ‘난민단체’라는 표현을 쓰는 게 좋으냐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난민단체’라는 표현이 유 원장의 입에서 나왔을 때 아무도 어색해 하지는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자신을 ‘난민’이라고 부른 유 원장의 마음을, 최소한 이 자리에서는 모두가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기자는 생각한다.
개혁당-국민참여당은 처음 등장한 ‘진보 리버럴’의 당
국민참여당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 원장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유:그런데 사람들이 말합니다. ‘너네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데, 여기 당 가보면 누구누구 있고, 저기 당 가보면 또 누구누구 있고, 그런데 왜 그렇게 (흩어져) 있는데? 덩치도 안 되는 것들이 왜 따로 노냐? 너네 뭐할 건데?’ 이렇게 묻습니다. 국민의 마음을 모아야 변화가 일어나는데, 우리 마음부터 모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어요. 물론 말을 하다보면 지난 시기의 상처도 있고 서로 간에 충돌도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돌멩이밖에 안 던졌는데 너네는 대포를 쏜 것 아니냐’ 이런 말도 듣고요. 우리가 집권 세력이었으니까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어요. 분명히 ‘오발’도 있었고. 그러나 국민 마음을 모으려면 넓은 의미의 진보세력들이 자기들부터 모여야 국민들도 모일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우리끼리 아기자기하게 재미있는 정치를 하고 싶은 욕망도 있어요, 하지만 정당을 왜 하는데? 정권을 바꿔야 할 것 아니냐? 겨우 이 진용 가지고 나라를 맡겠다고 할 거냐, 이런 고민이 또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다 알고 있는 분들이고, 또 지원 유세도 가고 하면 다 선배거나 동료거나 후배거든요. 언제까지 진보세력이 이렇게 갈라져 있을 거냐, 이렇게 묻게 됩니다. 정치도 규모의 경제가 있는데, 정당과 정치의 평가는 동기의 순수성이 아니라 결과에 대한 책임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런 의미에서 책임 윤리가 부족한 건 아닐까하는 자책감도 있습니다. 1987년에는 다 같이 있었는데, 왜 정당은 같이 못할까? 같이 당을 하면 안 되나? 우리끼리 마음을 못 모으면 누구보고 마음을 모아달라고 할까? 그런 복잡한... 제가 요즘 마음이 복잡해요.
이:저도 생각이 많습니다. (웃음) 다들 생각이 많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누구나 ‘내가 생각하는 길 말고 다른 길은 없나? 내가 편협해 지고 있지는 않을까?’ 돌아봐야 해요. 분명한 건 2012년에 성과를 내야한다는 점이잖아요. 2012년에 정권을 반드시 바꿔야 한다는 명제는 맞습니다. 국민들도 그걸 바랄 것이고요. 만약 이걸 해내지 못하면 저희는 과연 왜 존재하는 것이냐는 질문을 받게 될 겁니다. 살아가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마음을 모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들 간의 차이는 무엇일까? 큰 틀에서 생각해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다 털고 가셨다’. 이게 제 판단입니다. 지금의 상황이 엄중함을 몸을 던져서 말씀하셨고, 진보의 미래를 어떻게 해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 하셨지요. 당신이 실제로 국정을 운영하면서 부족했다고 생각한 부분을 이미 평가하신 바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큰 틀에서 공감한다면, 정책적인 부분에서 의견을 모으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각자가, 저희는 11년, (국민참여당은) 2002년부터 걸어온 길이 있는 것인데, 그 길의 관성이 있지요. 거기에서 갑자기 확 당기면 튕겨나갈 수 있기 때문에(웃음) 어떻게 큰 틀에서 묶어 나갈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무엇보다 민주노동당으로서는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이 진보신당과의 통합이거든요. 이게 최우선이고, 그렇다고 해도 모든 길은 다 열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모든 길에 대해서 다 열려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요, 시작만 잘 열어간다면 빨리 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유:우리로서는 조금 민망한 게 남들이 우리에게 노무현 정신만 앞세운다고 욕을 하는 점입니다. 그게 그렇게 이상한가요? 역사는 위인들의 정신을 더 넓게 펼치는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전태일 정신하면 민주노동당의 정신이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참여당은 노무현 정신을 당의 정신으로 합니다. 그렇다고 노무현 대통령을 그냥 추종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실패하고 쓰러진 부분에서 더 앞으로, 더 진보하려는 겁니다. (참여당은) 노무현과 다르게 가야지요. 왜냐하면 진보해야 하니까,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까. 뒤를 따라 가려는 게 아니에요. 진보 통합을 놓고 보면 관성의 법칙이라고 할까, 우리의 의지보다 기존의 관성에 구속당하는 것 같습니다. 진보통합은 전략이나 정치 공학보다는, 함께 같은 공동체에 귀속되어서 그 속에서 무언가 이루고자 하는 지향이 더 근본적이라고 봐요. 쉽게 이야기하면 전태일 정신하고 노무현 정신하고 그렇게 먼가? 그게 그렇게 멀지 않거든요. 이걸 어떻게 잘 하느냐는 다양하게 생각해 볼 부분이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장기적 관점에서 정당 지형의 개편, 정치 문화의 변화, 국가기능의 변경까지 다 하고 싶거든요. 정권교체가 중요하지만, 그것 하나만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수는 없잖아요. 근본적인 지향을 추구하면서도 이 시기에 국민들이 요구하는 정권교체라는 목표도 전면적으로 껴안고 해나갈 수 있다는 겁니다. 아군끼리 ‘오인사격’ 안하고, 물론 생각 차이도 여전히 좀 있지만, 그건 조율해 나갈 수 있을 것 같고... 말하기가 좀 어렵다. 그렇지요? (웃음)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국민참여당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 원장이 민중의소리 이정무 편집국장 진행으로 대담을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여기서 기자가 두 번째로 끼어들었다. “두 분이 지금 토론하고 계신 문제는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합당 문제가 맞는 거죠?” 다 함께 웃었다. 이 대표가 유 원장에게 물었다. “맞아요?” 유 원장도 물었다. “맞아요?” 다시 모두가 웃는 바람에 누구의 대답도 들리지는 않았다. 한 바탕 웃고 나서 유 원장이 말을 이었다.
유:부인할 필요는 없어요. 연대는 일단 기본적으로 하는 거잖아요. 민주당부터 진보신당까지 모든 진보개혁 야당들이 손을 잡고 의회 권력을 바꾸고 정권을 교체하자는 데는 이견이 없이 다 하자는 것이거든요. 그러나 손만 잡는 것보다는 스크럼을 짜는 게 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각각 손만 느슨하게 잡고 있는 것 같단 말입니다. 이렇게 손만 잡아서 위력이 있겠느냐? 스크럼 짤 수 있는 팀들은 중간 중간에 스크럼을 짜도 좋지 않겠냐 이런 게 통합 논의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연대만 한다, 통합은 아니다’도 아니고, ‘통합이 아니라면 연대가 무슨 의미냐’도 아닌 겁니다. 결국은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함께 귀속되고자 하는 의지’. 이게 두 당의 당원들이나 지지층 내에서 얼마나 강하게 형성되느냐, 또 아직 두 당을 지지하고 있지 않은 국민들이 두 당이 연대하거나 함께 귀속되는 모습을 어떻게 볼까 이런 걸 따져 봐야겠지요. 그런데 지금 분위기는 말 꺼내기가 피차간에 조심스러워요. 자칫하면 공학적인 구상으로 보일 것 같아서요. 그래도 금칙어로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운, 그런 분위기는 있어요.
유:민망한 것이 우리는 ‘너네는 진보 아니다’ 이런 이야기도 듣거든요. (웃음) 이 기사를 민주노동당원만 보는 게 아니라, 국민참여당 당원들도 보실 텐데, 제가 너무 참여당 이야기만 많이 한 것 같은데요. 이 대표께서 민주노동당 이야기도 해 주세요.
전태일 정신과 노무현 정신은 만날 수 있을까?
이:아까 말씀드린 것 같은데...(웃음) 제가 당대표 선거를 하면서 그런 말씀을 드렸어요. ‘민주노동당은 한국정치사에 절대 그냥은 나올 수 없는 당이다, 그리고 결국 한국 정치는 이 방향으로 갈 것이다’라구요. (민주노동당이) 구조가 탄탄하고, 노동자 농민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은 굉장한 강점입니다. 이렇게 단단한 지지 세력이 없다면 쉽게 기존의 정치구조에 빨려 들어가거나 흔들리거나 섞일 수 있거든요. 또 민주노동당의 강점은 당원들의 생각, 문화에서 드러나는 데 우선 허풍을 잘 안합니다.(이 대목에서 이 대표는 혼자 웃었다) 그리고 당이 한번 결정을 하면 거의 흔들림 없이 한 번에, 한꺼번에 갑니다. 그만큼 깊은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앞으로 저희는 진보신당과의 통합을 해야 할 것이고, 통합해도 이 구조는 유지될 것입니다. 같은 당이었기 때문에. 장점을 똑같이 갖고 있는 당이니까요. 조금 더 전진할 경우가 있겠지만(웃음) 그럴 경우에도 이 장점이 유지됐으면 합니다. ‘앞으로의 문제’가,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말씀드리기가 아직은 무거운 주제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열어놓고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분명 진보정당의 힘이 급격하게 달라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요. 정책적인 문제만 놓고 보면 미세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확실히 민주노동당은 조심스러운 당이네요.(웃음) 저희는 민주노동당처럼 규율이 강하지는 않습니다. 한 사람은 막 뛰어가고, 한 사람은 걸어가고 이게 다 용인이 되요. 자유로운 개인들이 수평적으로 모여 서 있는 당입니다. 별도의 지역적 계급적 기반보다는 ‘하고 싶은’ 개인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래서 약간 느슨해 보이지만 대신에 신명이 나서 할 때는 열정적이지요. 진보통합에 접근하는 분위기도 사실은 민주노동당처럼 엄숙 진지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나 막 의견을 이야기하지요. 그래서 참여당은 부담이 덜한 데, 신생당이라 실력이나 역량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말을 잘 꺼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옛날 정치인들이 밀실에서 각서 쓰고 어느 날 갑자기 기자회견 하는 것도 아닌데 논의를 해 보자고요.
이:민주노동당으로서는 진보정당 합당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지금 온몸의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주노동당을 지지해 오셨던 분들이 분당으로 인해 겪었던 고통을 벗어난다면 그 이후에는 여러 가지 논의들이 더욱 활발해 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유:하여튼 밀린 숙제를 잘 하십시오.(웃음)
진보통합 논의는 여기까지 진행됐다. 두 사람이 모두 ‘미세한 차이’, ‘극복할 수 있는 차이’라고 지칭한 정책적 문제들을 의제에 올리지는 않았다. 그것이 그리 작은 차이였는지, 아니면 지난 10년의 관성처럼 철길의 두 줄기 레일 같은 문제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민주당은 은평에서의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이정희-유시민 대담④-마지막] 마무리, 그리고 에필로그
이정무 기자 jmlee@vop.co.kr ㅣ 입력 2011-01-05 20:00:13 / 수정 2011-01-05 20:14:12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민중의소리에서 대담을 마친 유시민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 원장과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양지웅 기자
진보통합 논의를 끝으로 길고 긴 대담은 거의 끝났다. 정치인의 체력은 남다른 데가 있다. 옆에서 지켜만 보던 기자도 지칠 정도인데, 한 마디 한 마디를 골라야 하는 두 사람은 지친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이야기할 것이 많은 표정이다. 적당할 때 방 하나 잡아놓고 1박2일로 대담을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떠오를 정도였다.
마무리를 부탁했다.
유:이명박 정부가 하는 일도 한때 국민의 마음이 시킨 일입니다. 물론 그것 역시 국민들이 바꿀 수 있습니다. 조류가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지만 저변에서는 새로운 물 흐름이 형성되고 있어요. 앞으로 한 1년 정도가 2012년에 우리 국민들이 어떤 소망과 요구를 실현할 것인지를 결정할 것입니다.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정당이 객관적으로 요구되는 자기의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이게 당분간 지속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규모는 작지만 배포는 큰 진보정당들이 자신들의 꿈과 야심, 사명에 맞게 행동해야 합니다. 지난 시간 동안 많은 아픔을 겪었는데, 꿈을 더 크게 가지고, 내 당이 잘되느냐 못되느냐를 넘어서서 우리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마음으로, 마음을 모았으면 합니다. 앞으로도 서로 보면 기분이 좋고, 복잡하게 계산하지 않아도 믿을 수 있고, 마음으로는 같이 속해서 일한다는 느낌으로 한다면, 우리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민주노동당 당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하는 일 마다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이:유 원장님이 느끼시는 정치의 ‘매력’이 무엇인지도 더 듣고 싶고, 노무현 대통령이 털고 가셨다는 말의 의미도 좀 더 나누고 싶어요. 정당간의 문화차이도 더 알아보고 싶고... 좀 더 말씀을 나눠보고 싶습니다. 2012년에 우리가 정권을 바꿀 수 있는 힘도 있고, 능력도 있고, 만약 바꾸지 못할 경우에는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는 데는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의 완벽한 동의가 이뤄져 있습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에 대해서는 함께 논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으로도 큰 성과구요.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 통합이라는 과제를 먼저 풀어야 합니다. 여기에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으면 좋겠고요. 하반기가 되면 조금 더 큰 틀, 열려진 틀에서 얘기했으면 좋겠습니다. 민주노동당원이 민주노동당에 주는 큰 힘 같은, 그런 힘이 참여당에도 있습니다. 저도 국민참여당 당원 여러분께 새해를 맞아 복을 빌겠습니다.
대담을 마친 두 사람은 인근의 음식점에서 저녁 식사도 같이했다. 물론 이 부분은 ‘오프’이지만 공개적 대담과 비교하여 별다른 뉴스거리는 없었다. 다만 대담이 좋았느냐는 질문에 모두 ‘좋았다’고 답했다는 점은 밝힐 수 있다.
또 하나, 두 사람이 모두 오는 4월의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의 ‘약속 이행’을 촉구한 점도 기록해 둔다. 2010년 7.28 재보선 당시,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다음 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이 아닌 야당에 우선적 배려를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 대표는 비록 민주당의 지도부가 바뀌었지만 이 약속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유 원장의 표현을 빌자면 “중인환시(衆人環視)리에 야3당의 대표가 약속한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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