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얼마 전 선생님의 저서 ‘조선정치의 꽃 정쟁’을 접하게 된 40대의 평범한 필부입니다.
저는 평소 서점에 가면 책의 서문을 반드시 읽어보고 나서 그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프롤로그를 읽어보면 전체적인 책의 내용과 흐름을 알 수 있고, 무엇보다 저자의 문장력과 필력을 가늠해볼 수 있기에 그런 버릇이 생겼죠.
거의 매번 이 버릇은 지켜졌고 역사적 혹은 사회적 책임감이 부족하거나 저자의 인식에 한계가 서문에 보인다면 아무리 좋은 서평과 베스트셀러라 하더라도 내 돈 내고 책을 구입하여 읽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반민족적, 반역사적인 글이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저자 멋대로 쓴 거짓의 글로 만들어진 책이라면 책을 거꾸로 꽂아놓고 나오는, 저는 그런 고약한 심성의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책도 저의 이 버릇에 예외없이 프롤로그를 읽고 구매하였습니다.
흔히 말하는 ‘조선시대의 당쟁’이 식민사관에 의해서 비하되고 왜곡되어진 것이기에 ‘당쟁’은 ‘정쟁’으로 고쳐져야 한다는 선생님의 의견에 100% 동의는 할 수 없어도 반식민지사관에 기초한 선생님의 의견이 궁금했고, 그 논쟁이 흥미로울 것 같아서 740쪽이 넘는 선생님의 저서를 구매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함께 구매한 다른 책들을 먼저 읽고 난 며칠 후, 선생님의 저서를 읽어보려 했다가 우연히 책을 거꾸로 넘겨버려서 책 맨 뒤에 있는 에필로그를 먼저 보게 되었고, 그 내용에 매우 당황하였으며 솔직히 제 돈 내고 책을 구입했다는 것이 후회스러웠습니다.
이제부터 그 에필로그의 짧은 글을 가지고 말하고자 합니다.
불편하시더라도 끝까지 읽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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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봉승
1933년 강릉 출생.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현대문학>에 시·문학평론을 추천받아 등단.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회장, 대종상·청룡상 심사위원장, 공연윤리위원회 부위원장 역임. 현 추계영상문예대학원 석좌교수.
한국방송대상, 대종상, 청룡상, 아시아영화제 각본상, 한국펜문학상, 서울시문화상, 위암 장지연상,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상. 보관문화훈장 수여.
조선왕조 5백년, 소설 한명회, 이동인의 나라, 조선도 몰랐던 조선, 양식과 오만, 조선사 나들이, 역사 그리고 도전, 일본을 답하다 등 저술. - 편집자 註 |
선생님은 에필로그에서 과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 시절의 역사관이 매우 빈약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싸잡아 비판하셨습니다.
그 중 제가 비판하고자 하는 부분만 옮겨보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주도한 참여정부에서는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자신들의 세력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리고자 하였다. 그럼에도 위의 세 정권이 내세운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명제나, 제2 건국 혹은 과거사 진상규명 등은 똑같이 정권적 차원에서 시도된 역사 뒤틀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앞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역사는 아무리 권력자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입맛대로 고칠 수 없고, 권력자 자신의 품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역사란 어떤 경우에도 정권의 노리개로 타락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실세들이 자신들의 이해에 득이 되게 정권적 차원에서 역사를 뒤틀고 악용하여 얻은 것이 무엇인가.“
신봉승 선생님, 질문드립니다.
질문 1) 참여정부에서 자신들의 세력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릴 의도로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었다면 곤경에 빠지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또한 선생님은 그 곤경에 빠뜨릴 의도를 어떻게 확인하였습니까?
질문 2) 참여정부 실세들이 자신들의 이해에 득이 되게 역사를 뒤틀고 악용한 사례는 무엇입니까?
질문 3) 과거사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당위는 인정하십니까? 인정한다면 그 진상조사를 누가 해야 합니까?
신봉승 선생님, 우리의 현대사가 군사정권에 의해서 오욕으로 이어졌고, 그들의 악행이 사실로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십니까?
그들의 온갖 만행에 의해서 고문당하고, 죽고, 억울하게 감옥에 가고, 간첩이란 누명에 평생을 고통받은 당사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보다, 진상규명이 됨으로써 곤경에 빠질 사람들을 걱정하시는 선생님이 역사 관련 저서를 내시고 역사 관련 시나리오를 쓰시는 분 맞습니까?
실망스럽습니다.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의 구성을 참여정부가 주도했다는 선생님의 주장에 대해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8.15경축사에서 이와 관련된 언급을 하신 것으로밖에 알지 못하는 저로서는 달리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참여정부 주도로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되어졌다는 것 자체를 어떤 정치적 의도로 보고 비판한다면 저는 먼저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럼 누가 그런 일을 해야 할까요?”
선생님은 혹시 역사학자들이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닌지요?
정권이 바뀌면 과거 자신들이 저질렀던 불법행위들이 기록된 관련문서가 잿더미가 되곤 했답니다. 아직 잿더미가 되지 않은 관련문서들도 해당 기관에서 공개를 꺼리고 있는데 역사학자가 어떻게 그 관련문서들에 접근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나라에서 현대사를 전공하는 역사학자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를 그 자신이 직접 현대사를 연구하는 한홍구 교수님께서는 ‘가장 가까운 현대사임에도 사실이 왜곡되어지고 사료의 접근성에 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즉, 관련된 사람들의 증언을 듣고 정부문서에 접근하는데 역사학자만의 조사로는 그 한계가 분명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결국 관련된 정부기관과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된 것이겠지요. 또한 관련된 정부기관의 고해성사가 있어야지만이 진상을 더욱 객관적으로 규명할 수 있고,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의 성군을 말하라면 많은 사람들이 세종, 정조, 성종의 순으로 말하곤 합니다. 역사학자들은 현재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사료도 빈약한 먼 과거 임금들의 평가는 곧잘 하면서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초등학교 고학년도 할 수 있는, 우리 현대사를 거쳐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는 매우 주저합니다.
그나마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이라는 것이 기계적 중립을 지킨답시는 양비론이 대부분이죠. 바로 선생님처럼 말입니다.
조,중,동과 사이비 학자들이야 원래 그렇다 치고, 일부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언론과 학자들이 참여정부 임기 5년 내내 ‘노무현 욕하기’를 즐긴 것도 바로 이 기계적 중립이란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조기숙 교수님의 표현대로 하자면 ‘어용이란 소릴 듣기 두려웠던 것’이죠.
모두가 노무현을 비난할 때, 어용이란 소릴 들을지언정 ‘노무현이 옳다’라고 말 한 마디 못한 용기없는 학자들, 지식인들, 언론인들, 진보주의자들이 그분의 서거 후에야 그의 가치를 알았답니다. 그들보다 많이 배우지 못하고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저 같은 사람도 예전에 알고 있었는데 그들이 몰랐을까요?
선생님은 정녕 몰랐습니까? 혹시 지금도 모르고 있습니까?
이쯤에서 눈치 채셨겠지요? 그렇습니다. 저 노빠입니다. 그분을 조선의 성군 세종대왕과 비교해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의 노빠 맞습니다. 그분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허물에 너무나 부끄러워하시며 스스로 몸을 던지신 분입니다. 그런데 노무현의 도덕적 기준에 발톱의 때만큼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물어뜯었습니다. 바로 우리들입니다.
조선시대 임금들이 누구를 만나던 독대를 하지 않고 언제나 승지나 사관을 곁에 두고 기록하게 하였듯이, 임기 내내 독대를 하지 않고 비서실장과 사관을 배석하게 한 분입니다. 그래서 역대 최고인 370여만 건의 대통령 기록물을 남겨서 역사 속에 그 자신을 철저하게 객관화시키려 혼신의 노력을 다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가 반대세력을 곤경에 빠뜨릴 의도가 있었고, 정권 차원에서 역사를 뒤틀고 악용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바로 신봉승 선생님같은 분입니다.
선생님, 저의 질문에 꼭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일 선생님께서 성실하게 답변해 주시고 그 내용이 제가 알고 있던 노무현, 참여정부의 모습과 매우 다른 것이라면, 그래서 선생님의 주장대로 역사를 뒤틀고 악용했다면 저는 먼저 저의 집 거실에 걸려있는 그분의 사진을 떼어버리고, 다시 선생님께 진심이 담긴 사죄의 글을 쓸 것이며, 직접 찾아 뵙고 삼전도에서 인조가 청 태종에게 했던 것처럼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라도 올리겠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제 질문에 말씀하신 그 의도와 사례를 마땅히 찾지 못하신다면 정중히 부탁드리건데, 선생님의 저서 ‘조선정치의 꽃 정쟁’의 개정판에서는 에필로그에서 제가 문제삼고 있는 부분을 삭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선생님에게 공개서한을 띄우는 목적입니다.
사실 ‘조선정치의 꽃 정쟁’이 처음 접해보는 선생님의 저서는 아닙니다. 선생님의 저서로는 이미 ‘조선도 몰랐던 조선’이란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이런 글을 선생님에게 올리고자 결심하게 된 동기도 바로 그 책 ‘조선도 몰랐던 조선’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그 저서에서 ‘율곡 이이의 10만양병설’이 율곡전서에도 나오지 않고 조선왕조실록에도 임금의 하문에 소문 정도로 언급되어있을 뿐이라며 허무맹랑한 허구라고 주장하셨습니다. 근거를 제시할 사료가 없다는 말이겠죠. 그런 선생님의 논리 전개대로라면 최소한 제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그 사례를 제시해 주셔야 합니다.
또한 같은 책 244쪽에서는 ‘건정동필람’, ‘북학의’, ‘용제총화’ 등을 예로 들면서 역사기록이란 것이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같은 정사기록이 아닌 에세이 형식의 책이라도 진솔한 내용을 담으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역사의 기술로 승화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위 선생님의 주장과 의견을 제가 조금 과장해서 비유해 보겠습니다.
먼 미래에 핵전쟁이나 자연환경의 변화로 인한 대재앙이 엄습해서 모든 문명이 파괴되고 책도 ‘조선정치의 꽃 정쟁’을 비롯한 몇 권밖에 남지 않는다면 생존한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는 바로 선생님의 저서가 역사서가 되는 것이고 노무현은 권력을 자기 멋대로 주무른 나쁜 대통령으로 평가받게 되는 것입니다.
신봉승 선생님, 어떻게 책임지시렵니까?
이러니 저의 문제제기가 고약하다고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저는 선생님의 책을 읽고 가르침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그분에게 늘 마음의 빚이 있는 저로서는 선생님의 에필로그를 먼저 보고 나서 책을 읽을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마치 그분에게 또 다른 죄를 짓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제 선생님께 개정판에서 에필로그의 일부 수정을 요구하는 글이라도 썼으니 열흘 넘게 먼지만 쌓여가는 책의 첫 장을 넘겨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분도 이해해 주시겠죠.
신봉승 선생님, 에필로그만으로 선생님이 저술한 책 모두를 넘겨짚어 평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그 짧은 에필로그가 저 같은 독자에게는 무척 아쉽고 아프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선생님 덕분에 이제는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기 전 프롤로그뿐만이 아니라 에필로그까지 꼼꼼히 읽어보는 버릇이 생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작은 소리라고 외면하지 마시고 한 번 고민해 보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개정판의 일독을 거침없이 권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회고록 ‘성공과 좌절’에서 과거사 관련 내용으로는 너무나 짧은, 그러나 미처 완성하지 못한 회고록에서는 그것이 전부인 그분의 과거사 관련 말씀을 옮겨와 봅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참여정부에서 수행했던 과거사 문제는 그 이전, 문민정부 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것은 억울하게 당한 사람들의 명예회복 차원에서, 그리고 불법적으로 행사되었던 국가권력에 대한 반성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왔는데, 참여정부에 와서 모든 것을 정리해서 종합적으로 해결하려고 많은 애를 썼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우리의 지난날 역사를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그 역사로부터 물려받았던 패배주의, 편의주의, 기회주의, 이런 문화들을 해소하지 못하면 우리의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 노무현 대통령 著 ‘성공과 좌절’ 277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