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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아저씨같은 대통령 되고 싶다”던 키작은 친구 - 원창희
팔불출 | 2009-06-17 18:39:47 | 조회 6844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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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아저씨같은 대통령 되고 싶다”던 키작은 친구

2009.6.17 | 원창희(오앤엔통상㈜ 회장)


 

1989년 여름 부산상고 동기생 가족들과 울진 불영계곡으로 피서갔을 때 물놀이를 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당시 ‘청문회 스타’로 이름을 날리던 노 대통령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알아봐 피곤할 정도였다고 원창희 회장은 회고했다. - 한겨레

 

‘단짝’ 원창희 회장이 회고하는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주변 사람들에게 고인과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인지 물으면, 대부분 주저없이 원창희(63) 오앤엔통상㈜ 회장을 꼽는다. 16일 원 회장의 부산 사무실을 찾아가 그에게서 ‘친구 노무현’에 대해 상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인간 노무현의 참모습을 조금이라도 제대로 알리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며 들려준 원 회장의 회고담을 가능한 그대로 소개한다. - 2009.6.17 한겨레

 

상고 취업반 졸업 뒤 취직…“왜 월급 차이 납니까” 항의 뒤 사표

 

1963년 부산상고에 입학해서 내 친구 노무현 대통령을 처음 만났어요. 그 사람은 키가 작아서 제일 앞줄에 앉았죠. 같은 반도 아닌데 쉬는 시간마다 우리 반에 놀러왔어요. 표정이 참 밝았죠. 명랑하고 농담도 잘하고.

 

1965년 여름 부산상고 3학년 때, '8인방'이라고 불린 단짝 친구들과 해운대 백사장에 엎드려있는 모습. 뒷 쪽으로 60년대 해운대의 전경이 보인다. 노무현은 돈이 없어 진학반이 아닌 취업반을 선택했고, 당시 불안한 미래에 대해 방황과 갈등이 많았다고 한다. - 편집자

2학년이 되면서 노무현 그 친구는 취업반으로 진학하고, 나는 진학반으로 갔어요. 졸업하고는 잠시 헤어졌죠.

 

친구는 부산에 있는 삼해어망이라는 조그만 회사에 취직을 했어요. 그런데 월급을 받으니까 대졸 신입사원의 절반밖에 되지 않더랍니다. 하루는 사장에게 면담을 요청해서 따졌대요. “다 같은 일을 했는데 왜 월급이 차이가 납니까”라고. 사장이 시원하게 답을 해주지 않으니까 직장을 그만둬 버렸어요. 6개월만에요.

 

 

부산상고 졸업 후 곧바로 봉하마을에 와서 사법시험 공부를 할 때의 청년 노무현. 봉화산 밑에 움막 공부방을 짓고 청운의 뜻을 펴던 시기이지만, 책값이 없어 울산의 막노동판에 뛰어들어야 했던 고난의 시절이었다고 한다. - 편집자

“고시에 붙을 때까지는 절대 안나올 끼다”

 

그리고는 고시공부를 하겠다고 결심했어요. 하지만 돈이 없잖아요. 그래서 울산으로 가서 막노동을 했어요. 당시 울산에는 온통 공사판이었으니까. 영남비료 공장을 짓는 데서 일을 했는데, 하루는 전화가 왔어요. 공사장에서 떨어져 다쳤다고.

 

병원에 쫓아갔더니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누워서 제대로 말도 못해요. 글을 써서 말을 하더군요. “부산 중부산세무서에 근무하는 큰형님(노영현·사망)에게 연락해서 이불을 보내달라”고 했어요.

 

퇴원하고 나서 울산 시장통에서 술을 마시며 “고시에 붙을 때까지는 절대 안나올끼다”라고 하더군요. 그리곤 고향으로 갔어요. 노 대통령이 고시공부를 한 것은 큰형님 영향이 컸어요. 부산대 법대를 졸업하고 고시공부를 하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세무공무원이 됐거든요. 노 대통령이 공부할 때도 형님이 봤던 책으로 했어요.


10명서 20만원씩 모아 요트 만들었더니 ‘호화요트’로 둔갑


1978년 부산에서 변호사 개업을 한 뒤 친한 친구 네명이서 부부동반으로 다달이 계모임을 했어요. 하루는 친구가 모임에서 요트 이야기를 꺼내더라구요. “200만원만 주면 부산 구포에서 에프알피(FRP·유리섬유보강플라스틱) 요트를 만들어 주는데, 1인당 20만원씩 10명이 모아서 요트를 한대 만들자”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끌어모아 요트 2대를 만들었어요.

 

일요일이면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요트를 탔죠. 당시 한국해양대, 부산수산대 등 대학에도 요트 동아리들이 있었는데, 정작 학생들은 요트가 없었어요. 그래서 대학생들과 함께 요트를 탔어요. 그러면 학생들은 김밥이나 막걸리를 준비해오고. 그런데 이게 나중에 언론에 보도되면서 호화요트로 둔갑을 했더라구요.

 

70년대 후반, 노무현은 부산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변호사였다. 주말이면 광안리 앞바다에 나가 대학생들과 어울려 요트도 타고, 밤늦게까지 백사장에서 막걸리 마시며 노래를 부르곤 했다고 당신께서 기억하신다.

 

돛 하나 달린 이 작은 요트를 두고,  1992년 부산 국회의원 선거 때 주간조선은 이른바 '호화요트' 기사를 냈고 이로 인해 '서민 정치인' 노무현은 적지 않은 상처와 공격을 받았다. 한때 양심을 팔아먹은 기자의 왜곡기사로 그치지 않고 이후 조선일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효화요트'를 물고 늘어졌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 편집자

그 당시 노 대통령은 일본을 왔다갔다 하더니 일본 요트강사 자격증을 따왔어요. “대한민국 최초의 요트강사 자격증을 땄다”라며 자랑하고 다녔죠. 무슨 일을 하든지 열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요트용품 제조업에 큰 돈을 투자했다가 날리기도 했어요.

 

1980년 쯤이었을 거예요. 하루는 권양숙 여사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어요. “요즘 건호 아빠가 뭐하고 다니는지 모르겠어요. 집에 형사들도 찾아오고, 정보기관에서도 찾아오고. 한번 알아봐주세요.”


민주화 운동 ‘시기상조’ 충고하자 “우리 각자 인생 앞으로 가자”


그래서 친구를 광안리해수욕장 횟집에서 만나 물어봤죠. 노동운동, 민주화운동에 푹 빠져들어 열심히 하고 있더군요. 당시 제조업을 하고 있던 나와는 생각이 많이 달라져 있었어요. 나는 열심히 설득을 했어요.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돼야 그런 것도 하는 것이다, 아직은 시기상조다 등등. 몇시간을 이야기하고 횟집에서 나왔는데, 헤어지면서 그러더군요. “우리 각자 인생 앞으로 가자.” 서로의 인생살이가 다르니, 각자 자신의 길을 가자는 말이었죠. 섭섭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지만 확고한 신념이 이미 선 사람을 더는 말리지 못했어요.

 

결국 1987년 구속도 되고 변호사 자격도 정지됐죠. 하루는 밤에 전화를 해서 “친구야, 먹고 살 일이 캄캄하다. 너그 회사에 취직 좀 시켜도. 먹고 살게”라며 한숨을 쉬더군요.

 

1987년 8월, 거제 대우조선 파업현장에서 최루탄에 맞아 숨진 노동자 이석규씨의 사체부검과 임금협상을 도와주다, 노동법의 대표적 독소조항인 `제 3자 개입금지' 혐의로 구속된 노무현 변호사. 수의에 33이라는 숫자가 선명하다. - 편집자

생각은 DJ에 공감…정치입문은 YS 밑에서


1988년 제13대 총선을 앞두고 내가 “변호사 자격도 정지되고 할 일도 없는데, 니가 추구하는 것을 제도권 안에 들어가서 하면 어떻겠노”라고 권했어요. 그렇게 정치인의 길로 들어섰죠. 그런데 친구는 “디제이(김대중)와 와이에스(김영삼)를 비교해 볼 때 디제이 생각에 훨씬 공감한다”고 하더군요. 그건 내가 말렸죠. 부산에서 정치에 입문하려면 무조건 와이에스 밑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디제이와 와이에스 양쪽에서 모두 친구를 영입하려고 애썼는데, 결국 와이에스의 도움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어요. 어디에서 출마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와이에스에게 부산 아무 데나 달라고 했다”고 해요. 그리곤 부산 동구로 자원해서 갔죠. 부산 최고의 강자인 허삼수가 버티고 있었는데. “군사 독재정권의 최고 실세와 피할 수 없는 한판 승부를 벌이겠다”는 논리를 폈죠.

 

그런데 돈이 있습니까, 조직이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었죠. 당시 내가 부산상고 53회 동기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졸업 20주년 기념행사를 한 직후라 동기생들의 연락처를 많이 갖고 있었죠. 그래서 동기생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소주 한병을 사더라도 동구 산복도로 구멍가게에 가서 사면서 노무현에게 한표를 찍어달라 부탁하라고. 정말 열심히 했고, 그렇게 해서 노무현 의원이 탄생했어요.

 

노무현 대통령 부부는 1994년 여름 열흘 동안 원창희 회장 등 친구 부부들과 함께 캐나다 여행을 다녀왔다. 일본 이외 첫 외국여행이었으며, 이때 골프도 처음 해봤다. 양 옆으로 노 대통령 부부, 가운데 원 회장 부부가 서있다. - 한겨레

청문회 스타 된 뒤 의원직 사퇴서…최형우·김동영 등 만류로 번복서


그리고는 청문회 스타가 됐죠. 주위에 친구들이 “너 이제 대통령해도 되겠더라. 국회의원 중에 니보다 똑똑한 사람이 없더라”며 부추겼어요. 그런데 정작 본인은 무척 힘들어했어요. 전국 곳곳에서 밤낮으로 민원이 들어왔어요. 노무현 정도라면 무엇이라도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죠.

 

그런데 유명하기만 할뿐 초선 국회의원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심한 무력감에 빠져 정말 힘들어했어요. “국회의원 그만두고 시민사회운동을 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훨씬 보탬이 되겠다”는 말도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경남 거제도의 무인도로 친구를 데려가서 텐트를 치고 이틀 동안 쉬다 왔어요. 많은 이야기를 하고 많은 생각을 했죠.

 

그런데 돌아와서는 국회의원 사퇴서를 내고 잠적해 버렸어요. 권 여사는 말할 것도 없고, 와이에스까지 전화를 해서 친구를 찾아달라고 하더군요. 일주일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어요. 그러다 결국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틀 뒤 새벽에 권 여사가 전화를 해서 “새벽에 건호아빠가 돌아와서 지금 자고 있는데, 좀 와주세요”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김해공항에서 첫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갔어요. 우연히 그 비행기에 문재인 변호사도 탔어요. 목적지가 같더군요. 친구 집에 도착해서 조금 있으니까 민주당 의원 12명이 찾아왔어요. 최형우, 김동영 의원 등이 있었죠. 서명만 하면 되는 사퇴 번복서도 만들어 왔더군요. 의원들이 친구에게 설득을 하는데, 그때 친구의 어머니와 장모가 함께 부엌에서 귀를 쫑긋 세운 채 설겆이를 하고 있었어요. 마음이 참 안됐더라구요.

 

내가 담배나 한대 피우자면서 친구를 밖으로 불러 냈어요. 사표를 내면서 어머니에게 뭐라고 했냐고 물으니 “몸이 아파서 잠시 쉬기로 했습니다”라고 했다더군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자식 몸이 아파 일을 그만둔다는데 말릴 부모는 없겠지만, 앞으로 너그 어머니하고 장모는 오래 못살거다. 니가 이러는 것을 보면서 어찌 오래 살겠노. 친구가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그때 최형우 의원이 쫓아나와 “친구 이야기가 백번 맞다”며 우격다짐으로 번복서에 사인을 받아냈어요. 그런데 깜짝 놀랐어요. 당시 원내총무이던 최형우 의원이 친구에게 갑자기 큰절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번복서를 쫙쫙 찢어버려요. 그 다음에 하는 말이 “노 의원. 어차피 사인한 것, 내가 불러줄테니 자필로 번복서를 써주소”라는 거예요. 그래서 자필로 번복서를 썼고, 최형우 의원은 그것을 들고 돌아갔어요.

 

김동영 의원은 밥을 사겠다며 우리를 식당으로 데려갔어요. 김동영 의원이 식당에서 하는 말이 “야당 오래하면 친구들에게 손을 벌릴 수 밖에 없고, 결국 가까운 친구들의 껍데기까지 벗기게 된다”며 정치인생의 회한을 털어 놓더군요.


부산시장 출마 전 캐나다 여행…환경보호 눈떠


1992년도에 부산 동구에서 다시 출마했는데, 떨어졌어요. 언론에서 호화요트 기사를 낸 것이 이때였죠. 빈민가 밀집지역에서 분위기가 확 돌아섰지요. 1995년에는 부산시장 선거에 나가 또 떨어졌어요. 다시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부인 앞에서 각서까지 썼다더군요.

 

1992년 5월, 부산 칠성시장 앞에서 '광주항쟁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는 노무현. 어깨띠에 앞뒤로 '해체 민자당, 퇴진 노태우'라는 글귀가 선명하다. 국회의원 재선에 실패하고 다시 고향에서 활동하시던 시절이다.

 

당시 최루탄이 터져도 도망가지 않고 경찰들과 혼자 대적해 길바닥에서 버티는 노무현을 보고 경찰서장도 '독종'이라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 편집자.

부산시장 선거에 나가기 전인 1994년 여름 내가 제안을 해서 친한 친구들끼리 부부동반으로 10명이 열흘 동안 캐나다에 여행을 갔어요. 예전에 함께 계모임을 하던 친구가 캐나다 캘거리에 이민을 가서 살고 있었거든요. 노 대통령은 일본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해외에 나간 것이죠. 이때 친구가 환경보호에 눈을 떴어요. “이렇게 큰 나라도 자연을 보호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는데, 조그만 우리나라는 정말 열심히 자연을 지켜야 하겠다. 야생동물을 지키는 것도 그렇고, 여기가 정말 모범사례다”하면서 쉴 새 없이 환경보호를 강조했어요.

 

골프장도 이때 처음 갔어요. 해양수산부 장관이 되고 나서 처음 골프를 쳤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그 전에 캐나다에서 한번 골프를 쳤죠. 이때까지 노 대통령은 골프에 대한 거부감, 나쁜 시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캐나다의 골프장을 가보고는 자연환경을 유지하면서도 골프장을 만들 수 있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죠. 권 여사도 “우리도 귀국하면 골프를 배워요”라고 친구에게 권했죠.

 

실제로 권여사는 귀국해서 골프를 배웠는데, 친구는 바빠서 배우지 못하다, 해수부 장관이 된 뒤에 배웠죠. 장관이 된 직후에 친구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친구야 머리 좀 올려도”하더군요. 정식으로 골프에 입문하겠다는 것인데, 당시 내가 상황이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창원에 있는 동기생인 강태룡 회장에게 연락해 대신 머리를 올려주게 했지요.

 

2001년 들어 하루는 그래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말렸죠. 안된다고. 그런데 경선을 거쳐서 하기 때문에 될 수도 있다고 해요. 그래서 대통령 후보는 될 수도 있겠다며 웃고 말았죠. 그런데 진짜로 출마선언을 했어요. 결국 나는 모든 일을 전폐하고 도왔어요. 동문들에게도 도움을 청하고요. 모두가 열성적으로 했어요.

 

내가 또 물었어요. 어떤 대통령이 되고 싶냐고. 그런데 이렇게 답을 해요.


“이웃집 아저씨같은 대통령 되고 싶다”


“이웃집 아저씨같은 대통령이 되고 싶다. 경호원 한두명만 데리고 대학로에 가서 포장마차 아무 데나 들어가서 닭똥집에 소주를 마시는 대통령. 옆자리 손님과 편하게 술잔을 주고받으며 이야기 나누는 대통령. 그런 나라의 대통령이 되고 싶다.”

 

국민들은 그런 권위 없는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권위를 확 낮춘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당선되고 나서도 도와준 많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안해요. 주변 사람에게 고맙다는 전화라도 하라고 시켜도 하지 않아요. 솔직히 많은 사람들이 섭섭해했죠. 결국 선거 캠프에 참여했던 고등학교 한해 후배 최도술씨에게 시켜서 감사편지를 사람들에게 보내게 했어요. 그제서야 사람들 마음이 많이 녹았어요.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것을 가식으로 생각하더군요. “고마움은 마음 속에 가지고 있어야지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에요. 정치인은 그러면 안되는데 아쉽더군요. 그 바람에 나는 사람들을 이해시키느라 애를 먹었죠.

 

대통령후보 시절 노짱님의 아침 모습. 노짱님은 아침 5시에 눈을 떴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명상과 요가였다고 한다. 노짱님은 요가 예찬론자다. '맨손체조와 스트레칭을 엮어 남편이 직접 개발한 이상한 동작들도 있다'고 권 여사는 전한다.

 

대통령 재임 기간,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왕성한 순방외교를 펼칠 때 노짱님의 평균 수면시간은 4시간을 넘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각 국을 돌며 그 강행군을 버틸 수 있었던 당신만의 노하우는 토막잠과 라면과 요가라고 말씀하시던 기억이 새롭다. - 편집자

그런데 대통령에 취임한 뒤 동기생들을 청와대에 초청한 일이 있었어요. 한 사람 한 사람과 옛날에 함께 겪었던 이야기들을 하는 거예요. 학교 다닐 때 다른 친구가 쓴 연애편지 내용까지 기억하고 있더라구요. 신기할 정도였죠. 말을 하지 않아도 눈빛만 보면 서로 통하는 신뢰,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죠.


“언론권력의 폐해 누가 막겠느냐”


대통령에 당선되고 부산에 처음 왔을 때 롯데호텔 객실에서 1시간 동안 만났어요. “청와대 들어가면 우리는 영영 못만나는 것 아이가? 앞으로 우찌 연락하모 되노?”하고 물으니까 “내 수행비서한테 전화해라. 내가 24시간 안에 니한테 전화하모 되는 것 아이가”라고 했어요. 그리고 이 약속을 한번도 어기지 않았어요. 내가 전화를 걸면, 몇시간 뒤라도 반드시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고?”하고 물어요. 무슨 일이 있겠어요.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 잠깐 하고, 힘내라 하고 그러는 것이죠. 그런데도 반드시 전화를 걸어주는 친구가 정말 고마웠어요.

 

친구는 남에 대해 폄하나 나쁜 말을 하지 않은 사람이었어요. 가능한 남의 장점을 보려고 노력했죠. 누가 다른 사람의 단점을 이야기 하면 “아니다. 장점이 더 많다”고 했죠. 그러면 말한 사람이 머슥해져요. 언론에서는 말을 함부로 상스럽게 한다고 비판했지만, 본인은 다른 사람이 잘 알아듣게 쉽게 말하는 것을 즐겼죠. 한마디를 해도 가슴에 와닿는 말, 평범하지만 이해하기 쉬운 말을 한 것이죠.

 

대통령이 되고 나서 말을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많이 말렸어요. 언론과도 잘 지내라고 했어요. 그런데 “언론권력의 폐해를 누가 막겠느냐. 내보고 대통령 하지 말라는 말이냐”며 본인의 소신을 꺾지 않았어요. 오히려 지방언론도 활성화시키고, 다양한 언로를 만들려고 했죠.

 

2004년 봄, 임기가 한 달 남은 17대 국회가 임기가 4년 남은 16대 대통령에 대해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최초 발의는 민주당이었고 이에 한나라당이 가세했다. 대통령의 집무는 정지되었고, 이후 6월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기각 결정이 나기까지, 당시 관저에서 머물고 계실 때의 모습이다. - 편집자

퇴임하기 1년 전쯤에 내가 물었어요. 집도 없는데 다음에 어디에서 살 거냐고.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더군요. 내가 그랬어요. 부산에 내려와라. 살아보니까 부산이 제일 살기 좋더라. 지역균형발전을 부르짖은 대통령이니까 부산으로 내려와서 살면 좋지 않느냐. 옛날에는 선비가 벼슬에게 물러나면 고향으로 내려가 후진을 양성하고 고향을 지키고 그러지 않았느냐고 했죠. 그랬더니 친구가 “야, 니 말이 맞다. 부산에 집을 한번 알아봐도” 하더군요.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마땅한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결국 봉하마을로 결정했죠.


“나는 그 시계 구경도 못했다”


돌아가시기 전 검찰 수사가 진행될 때는 매일 찾아가서 마음을 풀어주고 싶었는데, 친구가 전화로 그래요. “기자들이 많으니까 찾아오면 괜히 얼굴 꺼실린다. 오지마라.”

 

돌아가시기 열흘 전에 한번 보고싶다고 연락이 와서 생선회를 준비해서 부부가 함께 봉하마을로 갔어요. 두 부부가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했죠. 일부러 검찰 수사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힘이 없어 보였어요. 허리가 아파서 오래 앉아있지 못하더군요. 중간중간에 일어나서 잠시 몸을 풀고 다시 앉곤 했어요. 오래 있어서는 안되겠다 싶어 “이제 갈란다” 했더니 “그래 가라. 나도 글 써야 한다”고 했어요.

 

권 여사가 “내가 이 양반 힘들게 만들어 미안해요”라고 하더군요. 친구는 박연차 회장에게서 받았다고 언론에 보도된 1억원짜리 시계에 대해 “나는 그 시계 구경도 못했다” 하면서 “내가 주변 사람들을 너무 힘들게 했다” 하더군요. 친구는 결벽증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거짓말을 못해요. 그 친구가 몰랐다면 진짜 몰랐던 거예요. 돈 받은 사실을 말하면 불호령이 떨어지니까 권 여사가 말을 못한 것이죠. 시중에서는 부부간에 모를 리가 있나라고 하지만, 그게 상식이지만, 이 부부에게는 그렇지 않았어요.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던 날도 찾아가서 만났어요. “정치라는 것이 정말 어렵다. 주변 친구들 주머니나 털고”라며, 나를 가리키며 측근들에게 “저기 골병 든 친구 하나 있네”라고 하더군요. 옛날에 김동영 의원이 했던 말인데, 그 말을 결국 친구가 하게 되더군요.

 

정치인에게 후원자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경제적으로 도와줄테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손 벌리지 말고 정치에 전념하라는 것 아닙니까? 언론에서 줄곧 박연차씨와 강금원씨를 노 대통령의 후원자라고 보도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와서 왜 이럽니까?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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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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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맘  

나는 부득부득 이렇게 슬프다는 걸 티내야만 그나마 살겠어서요... 이렇게 한가지 사안으로 변함없이 이렇게 오랫동안 눈물을 쏟는다는 거... 여태 경험해 보지 못한 반응입니다... 보고 싶어 미치겠고 나름대로의 결의를 다지고 있습니다... 그 희생 헛됨이 없도록 일어나 맞서겠습니다.
09-06-17

앤드  

이제는 괜찮겠지... 하며 게시판 들여다보다 보면 어느새 눈물이 납니다.

노제때는 저녁때 보니 팔이 시뻘겋더군요
햇빛 알러지 있는걸 깜빡했습니다.
그런데 느낌이 없어요...

처음엔 잊지말자, 잊지말자 했는데
이제는 잊혀지지않을 확신이 섭니다.

꼭 제가 선 이 자리에서 그 희생 헛됨이 없도록 일어나 맞서겠습니다.
09-06-18

사랑시  

사무칩니다.....
09-06-18

당희(당원희망)  

딴나라과들 시선에는 최고 권력을 쥔 분이였을지 몰라도 노짱님은 봉사만 하셨을 뿐입니다.
국민들 입장에서.... 이상한 지지자들이 서운해해도 국민만을 위해....

보고싶습니다. 영원히 사랑합니다.
09-06-18

싸나이  

이런사람 또 없습니까??
정말 없는겁니까??
우가 대답좀 해주세요....
나 이사람처럼 살고 싶습니다...
09-06-18

무극이아빠  

후.... 원창희회장님, 고맙습니다.
09-06-18

지나가다가  

글읽는 내내 노통님을 연상하니

슬픕니다.

어찌 님을 이리도 힘들게한놈을 절대로 용서해서는 않됩니다.


이명박.

너 두고보자,
09-06-18

딸갱이ㆀ  

격무로 지친 몸과 그보다 더 힘겨웠을 마음.. 생각하면 늘 가슴이 아려옵니다.

노짱님 생각할 때 자주 듣는 노래 입니다 [ 뱅크, 상처받은 천사를 위한 자장가 ]

Hey~ 슬픈 얘기는 꿈속에서 모두 깨끗이 잊어버려요..
또 하루 많은 슬픔들이 약하기만 한 그대에게 힘겨울 거에요..
알고 있나요. 항상 내마음 그대를 지켜주고 싶은걸..
Good Night My-Dear..좋은 꿈 꾸어요..
아직 맺혀있는 그대 눈물 내가 닦아 줄테니..
이밤이 모두 지나 그대 눈뜰때면 아무도 해줄수 없는 입맞춤을
상처입은 그대에게 줄 수 있을 거에요..Oh Good-Night..
09-06-18

선봉장  

눈물이 나네요

정말 눈물이납니다
깊은 가슴에서 부터 원한맺친 눈물이,,,

우리가 강해져야합니다.
힘을 모아야 합니다
지금은 작은것은 작게,,,
큰힘을 모아야합니다
09-06-18

싸나잉가슴  

동구에 살고 있었으면서도 모르던 얘기네요...
그동안 참 무심했던것 같습니다...

당시 허삼수는 알아도 노무현은 몰랐으니...
이제라도 알았으니 감사합니다...

진정코 감사합니다....

이런 인연이라도 있어 감사합니다...
09-06-18

Suhprise  

거 뭐 봐도 봐도 그냥 눈물만 나네요.
왜 이제서야 소중함을 알게되었는지....
살아계실 적에는 그냥 늘 곁에 있구나 했고, 그래서 아무때고 찾아가면 뵐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늦은 지금이 참 후회스럽습니다.
모래사장에 노짱님 깊이 파인 주름만큼이나 고생이 심하셨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네요.
저희가 못 지킨 것이 아니라 안지킨 후회를 이제서야 합니다.
참으로 소중한 분인데.....
09-06-18

마음세정  

원창희 회장님 감사합니다!
노짱님이 5.23일 하늘나라로 간 뒤부터 눈물로 살아야하니 미치갰내요.
이분을 어떻게 살려내야 하는지! 명박이 너 !~ 결코 제명에 못 죽지! 암 절대로....!
09-06-18

청춘.  

괜찮은 줄 알았는데, 다시 그립습니다. 이렇게 매번 새롭게 그립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09-06-18

세금폭탄  

가슴에 묻는다는게 무슨 말인지...감히 조금은 이해가되려합니다. 뻐근하니 맘이 아프네요.
잊혀질까 걱정했는데... 이젠 잊혀지지 않을까 살짝 걱정입니다.
09-06-19

*칸타빌레  

아직도 울어요.. 한달이 됐는데..
09-06-19

외사랑  

미치겠습니다. 그립다는 말조차 가벼워 보여 차마 말 못하는 바보입니다.
그냥 변치않고 따라 가겠습니다. 노짱님 가신 길을 믿음으로 따라 가겠습니다.
09-06-19

아랑아빠  

" 그래도 우리는 이런 대통령을 모시고 5년 간 살아 봤지만
우리 애들은 앞으로 100년을 가도 이런 대통령 못 모신다 아입니꺼! "

밤늦게 포항 분향소에 들려서 한참을 울고 가시던 30대 후반 아저씨의
울음이 다시 떠오릅니다.
09-06-19

준이맘  

노짱님 서거한 이틋날밤 황망한 가슴으로 조문갓을때 입관식 마차고 마을회관 문을 휠채어로 나오시던 여사님께 아주근접한 의치에서 이런 말씀을 드렸다 여사님 미안함니다라고 고개 숙인채 엿지만 분명 들으셧다 미안합니다라는 이말은 국민들의 말과 나의자책의말 모든 그 자체였다 그날조문이후 이애끓는 통한의 눈물은 이루말할수없다 아주작은비석 49제 전후로 가뵙지 않을수가없다시 결혼할딸들 남편모두 내손으로 뽑은 존경하는 우리대통령님 가장 인간다운 인간으로 사셧던 나의님이시여 어ㅉ그렇듯 무정히 홀연히 떠나셧는지 그고뇌를 다짐어지시고그날 방명록에 적엇듯이 이나라 이후손들 굽어굽어 살펴주소서 그리고 남은우리는 이세상 조금만더 소풍하고 다시만나뵐께요 부디 왕생극락하소서 부산 수영구 남천동에서 준이엄마올림
09-06-25

사무치는 그리움  

오늘도 저는 당신이 그립습니다...

'이젠 울지않을께요.' 혼자 했던 그 약속.. 지켜내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
09-06-28

완장찬 유인촌  

문득 문득 노짱님이 안계시다는걸 실감하면 가슴속 한 구석은 속울음 범벅이 됩니다.
아직도 님이 우리곁에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밖에..
믿겨지지 않아요. 어찌 이런 일이..
생전 처음으로 우리의 대통령으로, 나의 대통령으로 생각케 했던 분이였는데...
마냥 좋아만 했지 지켜드려야 할 분으로 생각치 못했던 님....
이제 님은 홀연히 우리곁을 민주주의와 함께 떠나셨습니다.
09-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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