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 사저에 제주인의 마음을 심었습니다" [화제] 4.3유족-노 대통령, 봉하마을에 제주 산딸나무 식재 '첫 국민식수'로 우뚝...대통령 내외 "내년 꽃필때 또 오세요" 2008.11.18ㅣ제주의 소리
한국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이자 국가공권력에 의한 참극이었던 제주4.3의 역사적 굴레를 걷어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제주4.3희생자 유족들의 '감격적' 만남이 지난 16일 봉하마을에서 또 한 번 이뤄졌다. 이번에도 노 전 대통령은 제주4.3희생자유족들에 대한 파격적이고도 각별한 애정을 보여줬고, 유족들은 감사의 뜻을 모아 4.3의 역사적 진실을 밝혀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봉하마을 사저에 제주4.3정신의 '뿌리'를 심고 돌아왔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시지부회 이중흥 회장(62)을 비롯한 임.회원 12명이 지난 16일 다시 한 번 봉하마을을 찾았다. 올 8월 방문에 이은 두 번째다. 당시 첫 방문에서 주고받은 '나무 기증'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제주향토수종인 '산딸나무'(제주방언 틀낭)를 노 전 대통령 사저 마당 한가운데 선물하고 돌아왔다.
▲ 4.3희생자유족회 제주시지부회 유족들이 지난 16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경남 봉하마을을
찾아 제주 '산딸나무' 한그루를 기증했다. 4.3의 역사적 굴레를 벗게 해준 감사의 뜻을 전한 것이다.
사진은 이날 식수를 마치고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와 기념촬영한 모습.
4.3유족회 제주시지부 임원들은 지난 8월 여름순례 일정 중에 자연인으로 돌아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봉하마을 사저로 직접 찾아가 '4.3에 대한 국가의 공식사과'를 표명해준 지난 2003년 10월30일 역사적인 '그 날'에 대해 거듭 감사하다는 진심을 전했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일반인들 중 외부 인사들로는 처음으로 제주4.3유족들을 사저 내부에 까지 초대해 차를 대접하며 환담을 나누는 등 파격적인 애정을 보여 유족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고, 일행중 유족회 양영호 고문이 "사저에 제주도 나무를 심어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라고 노 전 대통령에게 제안하자 "제주도 나무를 심을 수 있으면 좋지요.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라고 화답하면서 이번 산딸나무 기증행사가 전격적으로 추진된 것이다.
4.3유족들은 일요일이었던 지난 16일 오후1시50분께 봉하마을 사저에 도착, 입구에 마중 나온 노무현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와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여름 방문에선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던 권 여사까지 직접 마당에 나와 유족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반갑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애쓰셨습니다!"라는 인사를 직접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 이날 식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인 권양숙 여사도 함께 참여했다.
노 전 대통령 내외와 유족들은 이날 사저 마당 한 가운데에 제주에서 가져간 산딸나무를 심고 그 앞에 기증 표석까지 세웠다. 이중흥 회장은 기증한 '산딸나무'에 대해 노 전 대통령 내외에게 "제주에서 '틀낭'이라고 부르는 산딸나무는 한라산 중산간에 많이 번식해있는 제주수종의 나무입니다"라며 "초여름인 5월경엔 하얀 꽃이 장관을 이루는데 이는 제주사람들의 순박한 마음을 닮았고, 10월이면 붉은 열매가 익는데 이것은 마치 4.3희생자들의 아픔을 상징하는 듯해서 산딸나무를 선택하게 됐습니다"고 말했다.
그러자 노 전 대통령 내외는 "유족분들의 정성을 잊지 않도록 가장 잘 보이는 사저 정원 한 가운데 심었습니다. 잘 키우겠습니다"라며 "내년 초여름 꽃이 피면 그 때 한 번 더 오시지요"라고 화답해 4.3유족들에 대한 끝없는 무한애정을 표했다.
특히 이번 봉하마을 사저에 식수된 '산딸나무'는 유족회 회원이면서 조경 전문가인 김홍수 씨(59. 동백조경 대표)가 기증한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컸다고 유족들은 입을 모았다.
이후 사저 내부 접견실에서 노 전 대통령 내외는 유족들에게 약 30여 분 동안 다과를 나누며화기애애한 대화를 이어갔다. 이 자리에서도 노 전 대통령은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밝히고 정리해야 합니다"며 "이미 재임시절 밝혔듯 4.3당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국가권력이 불법하게 행사된 잘못에 대해선 제주도민들께 사과하는 것이 옳습니다. 억울한 누명과 맺힌 한을 풀어주고 다시는 그런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함께 다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말로 5년 전 역사적인 '그 날'의 기억을 되살렸다.
4.3위원회 폐지 논란 등 현 정부의 역사인식에 대해선 "안타까운 일"이라는 심정 표현 외엔 가급적 말을 아낀 것으로 유족들은 전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 사저에서 4.3희생자유족회 제주시지부회 회원들에게 돌아가는 순간까지
각별한 애정을 표하며 '4.3의 희생정신'이 헛되지 않도록 당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날 약 한시간 가량 이뤄진 노무현 전 대통령과 4.3유족들과의 만남은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4.3위 폐지 시도 등 4.3에 대한 왜곡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어서 잠시나마 유족들의 아픈 가슴을 어루만지게 하는 시간이 됐다.
대통령 재임시절, 국가원수로서 대한민국을 대표해 국가공권력의 남용을 직접 사과했고 4.3 진상보고서를 확정시키게 한 주역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기에 유족들의 감회는 더욱 남달랐다.
이날 유족들이 사저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건강하십시오. 산딸나무 잘 크는지 보러 다시 오겠습니다"라는 인사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래요. 우리 또 만납시다. 산딸나무 꽃 필 때 다들 한 번 오시지요"라고 살갑게 화답해 '재회의 그 날'을 기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