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시각으로 2008년 11월 4일 미국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 '버락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선택했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의 기념비 적인 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흑인의 피가 섞인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는 것만으로도 미국인들의 선택은 칭찬 받을 만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기업인 출신이면서 주지사 출신인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역대 가장 낮은 지지율로 서글픈 임기를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경제를 살리겠다며 세율을 낮추고 상속세 감면을 추진한 결과, 최악의 빈부 격차를 낳은 대통령, 햇볕정책 같은 유화 정책은 굴욕이라며 악의 축들과의 대화와 협상을 거부한 매파 대통령, 석유라는 자원 외교를 위해 전쟁도 불사한 대통령, 경기 부양을 위해 부동산 거품을 방관한 대통령 부시. 그러나 이러한 대통령을 뽑았던 미국 국민들은 부시의 정책에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알게 되었고, 이제 '뉴 하트'를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1년 전부터 미국 민주당 후보의 2008년 대선 승리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었습니다. 민주당의 경선이 세계적인 흥행 가도를 달린 반면, 공화당의 경선은 그들만의 잔치로 전락했습니다. 같은 흑인이니 소수 약자인 10%의 흑인들이 버락 오바마에게 몰표를 주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백인들과 다른 유색인종들의 지지율에서도 오바마가 앞섰다는 소식은 미국이 아주 건강한 마음을 가진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기득권이 먼저 관용을 보이고 희생에 앞장서는 모습에서 미국의 저력을 새삼 느끼게 되는 이유입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백인 경찰관이 백주 대낮에 흑인을 집단 구타하던 미국 사회는, 몇 년 만에 인종 차별이라는 커다란 사회적 암덩어리를 빠른 속도로 치유해 버렸습니다. 물론 이러한 변화에 저항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 사회의 건강한 징후는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힐러리가 진보주의를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 빌 클린턴의 후광을 누리고 있으며, 부유한 집안 출신의 법률가 엘리트라는 점 때문에 미국의 '뉴 하트'는 거부감을 느꼈었습니다. 가난한 이민자 출신의 자수성가 오바마에 열광하는 미국 사회는 2002년의 대한민국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어쨌거나 그 후 5년 동안 대한민국은 '새로 얻은 심장'을 홀대하였습니다. 새로운 심장을 얻은 기쁨은 아주 잠시였으며 새로운 심장이 몸에 잘 맞지 않고 때로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외면해 버렸죠.
그러나 미국 사회의 풍토는 아마도 다를 것입니다. 그들은 새 심장을 통해 더 큰 거인이 될 것이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고 새로운 기술을 얻을 것이며, 새로운 철학과 문화를 탄생시킬 것입니다. 부시는 많은 것을 자신의 뜻대로 하려 했고 또 하였지만, 미국의 정신과 철학과 정의관을 없던 것으로 할 수는 없었습니다. 지금 우울한 대한민국 정치의 현실은 새롭게 시작할 준비를 하는 미국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오바마에게 표를 던지기 위해 난생 처음 투표장을 찾은 많은 사람들에게서 '선거'가 축제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지만, 우리의 선거를 돌아보면 그저 우울할 뿐입니다.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펼칠 기회를 얻으며 또 그럴 권한을 얻지만, 옳은 것을 그른 것으로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며 시민들의 영혼입니다. 국민들이 어리석고 낡은 심장을 지녔다면, 철권 대통령이 하자는 대로, 비록 그것이 옳지 못한 길이라 하더라도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현명하고 새로운 영혼으로 무장하였다면 대통령의 그릇된 생각은 어린 아이의 마음조차도 움직일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어떤 대통령이 나오든 욕만 먹는 대한민국의 정치적 풍토는 시스템과 영혼이 없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잘 보여줍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고 벌써 10개월이 흘렀습니다. 미국과의 관계 복원(?)을 최우선 순위로 삼은 이명박 당선인의 당선에 호응이라도 하듯, 미국 상하원 양원은 이명박 당선자의 당선 축하 결의안이라는 조금은 우스운 결의안을 채택하기까지 했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이 그토록 축하해 주던 한국의 MB 같은 보수우익 대통령이 지금 미국에서는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미국은 그저 미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의 대통령 이명박을 추켜세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새로운 미국의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이명박 정부와 여러 면에서 충돌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클린턴 정부가 김영삼 정부와 여러 면에서 충돌을 빚었던 것처럼, 또 부시 정부가 노무현 정부와 여러 코드가 맞지 않았던 것처럼, 오바마 정부는 이명박 정부와 여러 면에서 복잡한 물밑 갈등을 표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클린턴 정부 하의 미국과 관계가 가장 좋았던 점은 한미 정부 간의 정치적 코드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줍니다.
2000년도에, 선거 당일이 되어서까지도 우리나라 언론과 여론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8년 동안의 클린턴 집권 기간 동안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루어 되돌릴 수 없는 유일 초강대국이 되어 있었습니다. 클린턴 정부는 국제 문제에도 적절히 개입하여 상당한 성과를 이루었으며, 북한의 핵 문제도 다자간 회담을 통해 부족하나마 해결책을 마련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6월에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 정상 회담을 성사시켜 남북 간 우호 협력의 무드가 팽배한 상태였기 때문에,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되든 향후 정세는 별 차이가 없을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 여러 분야에서 큰 파장이 일어날 것이란 불안한 예감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부시의 당선은 결국 우리나라와 주변 정세에 여러 가지 나쁜 영향을 미쳤습니다. 세계 경제가 망가지면서 대한민국도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개인의 정치적 선거, 투표 행위가 자신의 일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간과하며 살아갑니다. 한 사람의 정치적 의사가 어떻게 거대한 의사 집단에 대항할 수 있느냐는 회의감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처럼 회의감에 젖은 각 개인들이 모여 거대한 정치 무관심 집단이 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을 거꾸로 해석한다면, 정치적 불신에 빠진 무수한 개인들이 정치적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세상을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번 미국 대선의 선거율이 역대 최고가 된 것 역시 미국 시민들이 이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역대 최저의 선거율을 낳은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의 결과는 지금 우리를 어떤 식으로 괴롭히고 있습니까? 우리 스스로 이제는 미국민들의 적극적인 정치적 능동성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새로운 심장을 지닌 민주시민으로 새롭게 태어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정치란 언제나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이지 정답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객관식 문제의 답을 모른다고 해서 그냥 둘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가장 정답에 가까운 보기를 골라 체크를 해야 합니다. 최고가 없다면 최선의 지도자와 대표를 뽑으면 되는 것입니다. 미국 대선은 우리에게 '나의 한 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