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면 다름을 인정하며 편 갈라서 경쟁해야 합니다.
이건 자본주의 시장경제 사회에서 행해지는 모든 시스템이 마찬가지입니다. 다르다는 건 "틀리다"가 아닙니다. 다르다는 건 그만큼 다양한 상품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시장사회에서 다름에 의한 다양성이야말로 그 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역동성과 생산성을 부여해주는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스포츠가 그렇고 기업이나 거기서 생산하는 물건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정치 또한 다름에 의해 다양성을 추구하고 역동적이고 생산적이게 경쟁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정치의 비극은 다름에 의한 편 가름이 옳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시스템에서 기인합니다. 이념이나 가치관 노선과 철학에 의해 편 갈라 싸우고 경쟁해야 함에도 이놈이 이놈 같고 저당이 저당 같습니다. 도대체 이 물건과 저 물건이 뭐가 다른지 일반국민들이 헷갈려하거나 알려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다르다의 판단기준이 사는 지역이 틀리다는 '틀림'의 차이에 의해 선택된다는 사실입니다. 정치를 소비하는 소비자가 다양성을 추구하지 못하고 다름을 인지하지 못하고 오로지 틀림에 의해 상품을 선택할 때 남는 건 "싸움"과 대립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정치에 있어 다름을 이야기하고 편 가르기를 이야기하면 분열주의자라고 욕만 뒤지게 먹습니다. 다름을 이야기하고 노선을 이야기하며 대표적으로 욕 먹고 있는 분이 우리 유시민 전 장관님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다름에 의해 편 갈라지지 못하는 근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공정한 룰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름에 의해 편 갈라 경쟁을 하려면 그 싸움의 룰을 시스템으로 정착시켜야 합니다. 어린 아이들도 모여서 닭싸움을 하던 술래잡기를 하던 자신들만의 룰을 만들고 최대한 공정하게 놀려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 정치에서 공정한 게임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내가 속한 집단이 어디냐에 따라 그리고 그 집단이 어느 지역을 기반으로 하냐에 따라 선택을 받습니다.
이건 한국 사회의 정당은 지역주의에 의해 모인 이익집단이기 때문입니다. 뭐 지역주의 이야기를 할라치면 한도 끝도 없고 여러분들이 저보다 더 해박하게 인지하고 있으리라 생가됩니다. 그럼 지역주의로 모인 정당의 정파 간에는 다름이 존재하느냐. 차이가 있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고 잡탕 정파가 된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한나라당은 친박계니 친이계니 하며 싸우지요. 도대체 이들 정파 간의 차이가 어디가 있어서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일까요? 하지만 이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잘도 모입니다. 그 모이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들이 싸우는 이유가 다름에 있지 않고 이익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은 총론에 있어 다름이 존재하지 않는 집단입니다. 거기에는 다양성도 경쟁도 생산성도 없는 집단입니다. 오로지 자기가 속한 정파가 얼마나 센지 그에 따른 보상으로 공천을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가 최고로 중요한 정치적 기준입니다.
그럼 열린우리당은 왜? 공중분해 되었으며 함께 했던 동지들은 서로 갈라지게 되었을까요?
열린우리당에는 김근태계 정동영계 그리고 유시민을 필두로 한 개혁당그룹이 있었지요. 열린우리당에는 다름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며 분열주의자라는 욕을 먹던 분과 그를 지지하며 그와 함께 다름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똑같이 분열주자 집단이라고 매도를 당하던 그룹이 있었습니다.
누구라고 이야기 안 해도 다들 아실 겁니다. 우리가 과거 4년 여동안 피터지게 싸운 이유가 무얼까요? 물론 우리 방식이 100% 옳았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다소 거칠고 전투적이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이고 극단적인 모습도 분명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가치와 노선을 가지고 즉 다름에 의해서 논하고 경쟁했던 대한민국 최초의 정파였다고 저는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과거 유시민 장관님의 한겨레21 인터뷰 내용입니다.
(클릭☞ 인터뷰 전문 읽기: '왕따에서 당개혁의 리더로?' - 한겨레21 2005.3.22. 제522호)
"우리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총선 이후 다수당을 차지한 그 좋던 초창기 4개월을 기간당원제를 폐지하기 위해 허송세월 했다는 것"이라며 "기간당원제를 근간으로 한 정당민주화에서 이렇게 퇴행적인 모습을 보이는 정동영 장관 쪽과 타협은 불가능하다"
장관님이 말하고자 했던 말씀의 핵심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기간당원제에 관한 분명한 노선의 차이에 대해 말을 하는 거지요. 너희가 잘못한 부분과 내가 앞으로 하려고 하는 노선에 대해 다소 과격하게 선전포고를 하고 유권자이자 소비자인 당원들로 하여금 어느 노선의 방향이 맞는지 토론을 해보자는 취지였지요.
하지만 이 인터뷰가 있고 나서 언론이나 다른 정치인들의 반응은 같은 식구끼리 이리 싸가지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느냐? 분열주의자다. 편가르기 하려 한다. 이런 비아냥거림이 전부였지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걸까요.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다양성에 의한 경쟁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그런 정당 문화의 한계 때문은 아닐까요?
가치가 아닌 정(情)에 의해 모인 조직의 한계
우리나라의 정파는 사람중심의 문화고 한국 사람들은 워낙에 사람을 좋아하는 정 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문화일 겁니다.
이는 민주주의를 하는 사회에서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정파의 행동으로는 거의 재앙에 가까운 생각입니다.
이는 자기성찰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각 정파의 정책기조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철학에 의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지하는 인물의 판단에 따라 이익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일 겁니다. 이런 그들의 행동이 정당 간 그리고 각 정파 간의 경쟁에 의한 노선의 차이나 철학의 차이 자체를 애매모호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지지자들 간에도 정파 간 정책에 의한 대립이 아닌 진흙탕 싸움의 대립만 만들어 놓은 꼴이 되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유시민 장관의 과거 인터뷰에서 유시민 장관은 달을 가리키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다수의 사람들은 달을 가리키는 그 손의 행태에 대해 비판을 합니다. 손가락 위치가 싸가지가 없다느니 가리키는 자세가 버릇이 없다느니 하면서 싸움과 대립에 몰두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 스스로가 사람중심의 문화가 아닌 가치중심의 문화, 공정한 룰이 통하는 그런 정치문화를 만들기 위해 유시민을 지지했고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모두가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건 다 양보해도 총론에 있어 노선과 철학이라는 이 가치에 대해 우리의 선택기준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진보를 이야기하고 새로운 정치를 이야기하는 우리가 쉬운 말로 우리가 남이가? 모두 함께 가야한다 모두를 끌어안자 이런 식의 정에 이끌린 모양새를 보인다면 이건 정치적 후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안희정씨를 이야기 안 할 수가 없군요. 그는 민주당에 남았고 우리는 민주당을 떠났습니다. 그는 여전히 민주당에 희망을 걸고 있고 우리는 민주당에 희망을 버렸습니다. 여기에 안희정과 우리의 "다름"이 있습니다. 또한 그는 민주당에 남아 있으며 정치적인 철학노선에 대해 민주당에 희망을 접은 사람들로 하여금 희망을 걸게끔 하는 설득작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다름"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이 "다름"으로 인해 그와 우리가 함께할 수 없는 건지 그 다름을 극복하고 그래도 함께할 수 있는 건지 그건 각자 자신의 정치적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안희정의 정치적 선택에 대해 너는 우리와 다르다고 말하는 분들의 글에 대해 분열주의자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우리가 꿈꾸는 정치와 정당을 건설하는 것 자체는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치적 철학과 노선의 다름에 대해 서로 고민하고 토론하고 경쟁하는 사회가 우리가 꿈꾸는 열린 민주주의 시민주권을 실천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양광장 시소지 8월호 주제가 "다름"이더군요. 시소 편집장이신 꽃마리님과 대화를 하면서 문득 "다름"에 대해 좀 길게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쓰고 보니 너무 길어져서 우선 여기까지 쓰고요. 다음 번에 "다르면 무조건 배척하고 경쟁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총론의 다름과 각론의 차이에 대해서 글을 이어갈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