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미워하고 존경하는 386입니다.
/꽃됴코여름하나니
저는 84학번이구요. 학교는 밝히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3학년 때(86년도) 반독재 투쟁하다 잡혀가서 영창과 군대 중 군대를 선택했었습니다. 그때 못 죽은게 한이 되어 지금도 눈물 흘리며 살고 있습니다. 저는 몇 년 전부터 고향은 아니지만 경상도 어느 지방에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고향은 서울입니다.
이 곳에 어떤 분이 386세대의 경험과 노련함이 절실하다고 도움을 청하셨더군요. 혹시 어제(28일)집회에서 저를 보신분이 있으실거라 생각됩니다. 프레스센터 앞에서 버스 끌어 낼 때 맨 앞줄에 함께 있었습니다. 물대포의 물줄기가 왼쪽 눈을 스치면서 시야를 잃어 쓰러졌고 주변의 시민들이 의료진있는 곳을 가르쳐줘 기다시피 찾아가서 식염수로 소독 정도 하는 응급처치만 받고 다시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벌어진 버스 틈으로 전경들이 몰려나와 뒤로 밀리며 대치하는 상황에서 휘두르는 진압봉을 막다가 왼손 엄지 손가락을 맞아서 또 부상을 입었습니다. 지금 왼쪽 눈은 부기가 있는 상태에서 시야가 흐립니다. 왼손은 심하진 않지만 부어있고 통증이 있습니다. 오늘은 병원에 가봐야 할것 같습니다.
저는 20년 전에도 친구같은 전경들에게 맞고 다녔고 지금도 아들같은 전경들에게 맞고 다닙니다.여러분 이게 386들의 팔자입니다. 그러나 우리 386들을 동정하거나 고마워 하지 마십시요. 모든게 자업자득 이니까요. 군부독재를 종식시키는데 한 축이 되긴 했지만 메인이벤트는 87년 6월 항쟁이고 그 주인공은 시민들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선배들이 이루어 냈다는 광주 민주항쟁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당시 우리 학생운동은 오픈게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죠. 그런 과정을 거치며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가 6,29를 기점으로 다시 쓰여지며 서로가 공과를 논하기 시작합니다. 민주주의가 완성 됐다고 봤던겁니다.
후배님들 그리고 차세대 주자 여러분! 고개 숙여 무릅 꿇고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았던 민주주의는 신기루였습니다. 문민정부는 군부독재정권의 연장선상에 있었고 무능하고 부패한 세력들이었습니다. 결국 곪아 터진 인기영합적 부패정권의 말로는 외환위기라는 엄청난 재앙을 몰고 왔습니다. 제 개인적인 견해지만 IMF가 죽인 국민은 전두환이 총으로 죽인 국민의 수보다 훨씬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때의 고통들은 대를 이어서 자식들에게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다시 정권이 바뀌며 국민의 정부가 들어 섭니다. 여기서 우리 386들은 스스로 세대교체론을 들먹이며 완전하지 못한 승리의 전리품 챙기기에 혈안이 됩니다. 기성 정치판은 여,야를 막론하고 386만이 대안이라고 추켜세우며 젊은 피 수혈을 부르짖었습니다. 거기에 피흘리며 죽어간 학우와 동지들의 주검 뒤에 숨어서 책장을 넘기던 파렴치한 반이성적 수구세력들까지 무임승차하며 묻어 타고 헤게모니 다툼에 뛰어 들었습니다. 저는 울었습니다. 제 눈을 파버리고 싶었고 가슴을 찢어 버리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될 줄도 모르고 민족앞에 조국앞에 제목숨 아끼지 않고 불질러 소신공양하고 한줌 재로 뿌려진 선배들과 동지들에게 한없이 죄스러웠습니다. 기성정치세력들은 386을 이용해 기득권 싸움을 끝없이 펼쳐나가고 386들은 다시 그것을 역이용해서 자신들의 기반을 세웁니다.
그렇게 구축된 엉성하기 그지없는 세대교체는 참여정부로 이어지며 어느 정도 힘을 얻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노무현 정권의 원칙론에 입각한 정치적 세례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제가 노무현 정권을 조건없이 찬양하는 소위 말하는 노빠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상상 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이루어 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원칙 위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든 모두를 만족시킬수도 모든 것을 다 얻을 수는 없는것 아니겠습니까. 참여정부는 대승적 차원에서 상생의 정치를 포기하고 맙니다. 다시 말해서 이쁜 놈이던 미운 놈이던 다 내 새끼이고 한 식솔이라는 개념을 버렸던 것입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아픈 손가락이 없어야 하는데 살이 퉁퉁찌고 굵은 엄지 손가락은 깨물어도 아프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도 엄지 손가락이 밉습니다. 하지만 엄지 손가락이 없이는 나머지 손가락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어제 시위에 나가서 엄지 손가락을 다쳐보니 그걸 더욱 절실하게 느끼겠더군요. 그래서 이따가 병원에 가서 치료를 좀 받아야 할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어떤 후배님이 올려주신 부탁의 말씀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을것 같네요. 제가 만약 내일 병원에 가서 의사가 손가락을 잘라내지 않으면 나머지 손가락도 위험하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잘라 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 손가락은 그렇게 까지는 안될것 같아 다행스럽습니다. 하지만 우리사회에 붙어 있는 엄지 손가락은 이미 썩을데로 썩어서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민심이라는 이름의 의사는 그 손가락을 잘라내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머지 손가락들도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잘라내야 합니다. 썩어 들어가기 시작한 시점부터 몇 번의 수술을 시도 했지만 그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군요. 악성이라서 그런겁니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들만 지쳐갑니다. 의사가 돌팔이라서 그럴수도 있습니다. 어떤 후배님이 이곳에 노련하고 경험 많은 선배 의사들을 공개초빙한다고 공고를 내셨습니다. 저 역시 그 대열에 든다고 봐야 하겠죠.
후배님들에게 그리고 우리의 차세대들에게 먼저 사죄부터 드립니다. 5,18과 6,10 민주항쟁으로 피흘리며 쌓아올린 민주주의의 소중한 정신을 다음 주자들에게 계승시킬 책임과 사명이 있는 우리 386들은 갑자기 불어난 자유와 향락적 문화의 대홍수 속에서 이성이 마비되며 민주화에 몸을 던지던 뜨거운 의식들 마져도 술통 속에서 질식사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왜 그렇게 성급했을까요? 그 어렵게 마련한 민주주의의 성찬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모두가 함께 음미하며 그 과정들을 같이 이야기 하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그런 정신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뼈가 되고 살이 되었더라면 작금의 이런 가슴 아픈 현실은 없었을 텐데 말이죠.
다시말해 온 몸을 던져서 건져올린 소중한 민주주의의 열매를 우리가 땄다고 우리가 먼저 삼켜버리는 바람에 여러분들에게 남겨줄 것이 없어진 꼴이 된것입니다. 열매를 먹었으면 씨라도 남겨서 땅에 묻어 두었어야 하는데 욕심많은 386들이 씨까지 삼켜 버렸습니다. 이제 자식들 보기 부끄럽고 미안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슈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이해, 준비가 필요 + 조직력의 문제
후배님들 그리고 차세대 주자 여러분! 다시한번 고개 숙여 무릅 꿇고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어깨에 너무 무겁고 가혹한 짐을 얹어 놓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요. 저희 386들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너무 장황하고 길게 늘어 놓으면 무슨 의식화 교육처럼 될 것 같아 그냥 간단하게 중요한 골자만 짚고 가겠습니다.
투쟁은 지식적 기반이 베이스에 깔리지 않으면 신념이 생성되지 않고 지구력이 떨어집니다. 다시말해 무엇을 위해 투쟁을 할 것인가(이슈)가 정해지면 그것이 현재를 구성한 역사적 배경에서 부터 꼼꼼히 챙겨서 정확히 이해해야 하며 나름대로 분석하고 재해석 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것들을 기반으로 현실을 평균대 위에 올려놓고 곡해없이 판단해야하며 다시 미래를 어떻게 준비 할 것이냐에 대한 깊은 고뇌와 자기성찰이 따라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자기철학은 신념과 의지로 자리잡고 그것은 곧 투쟁의 방향성을 제시하며 행동양식과 그 동선을 규정 합니다. 또한 확고한 신념이 없으면 죽음을 무릅쓰고 뛰어들 용기가 생기지 않는 법입니다. 덧붙여 지금 우리에게 던져진 이슈는 균형잡힌 역사관이나 국가관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최근의 재생적 민주화 투쟁이 80년대 우리가 주도했던 민주화 투쟁보다 한층 어렵고 간단치 않을 것이 라는걸 몇 가지 이유를 들어 먼저 말해 두고 싶습니다. 그것은 80년대의 투쟁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다는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었기에 탐구적 정신을 가지고 있던 학생들에게는 미쳐서 빠져 들기 좋은 유희와 같은 것이었고 정신적인 무장도 그만큼 강해 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랬기에 최초 시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민첩하고 선동적인 조중동의 뛰어난 활약덕분으로) 들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불굴의 신념과 의지를 다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양상이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화라는 이슈는 같지만 창조적 개념이 아닌 부활의 차원 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해 볼 수 있으며 그 투쟁을 앞에 서서 끌고 가는 주도세력들의 정신적 무장이 사생결단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되도 그만 안되도 그만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건 아닙니다. 쉽게 말하면 전자는 애를 새로 탄생시키는 것과 다 죽어가는 사람 살리는 것 중 어느 것이 쉬우냐로 비유하면 될 것 같고 후자는 산부인과 의사와 내과의사 중 누가 머리털이 더 많이 빠질까로 비유하면 될것도 같은데요.
또 한 가지는 누구나 지적하듯이 조직력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주도했던 학생운동은 학교라는 공동체로 자연스럽게 묶여 있었고 각 학교는 점조직이었으며 그것들을 다시 집합조직체로 묶어 주는 연합(전대협, 한총련 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투쟁은 학생운동이 주도해 나가지 않기 때문에 공동체적 개념이 흐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조직력을 어떻게 갖추느냐가 아닌 듯 합니다. 민주화 운동에서 학생운동이 중요한 이유는 활용적 측면에서 작동이 용이한 조직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학생이라는 신분은 이권에 개입될 소지가 가장 적은 계층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일반 시민들은 시위의 성격이 자신들의 이익과 상충되는 측면이 있거나 크게 득될 것도 잃을 것도 없다 싶으면 등을 돌리거나 무관심해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은 그런 것들로 부터 언제나 자유스럽냐 하면 사실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그나마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계층 중 가장 형평성을 잃지 않고 올바른 잣대를 세상에다 들이 댈 수 있는 균형감각과 가치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학생운동이 중요한 이유는 학생들은 어떠한 물리적 저항에도 대응할 만한 충분한 에너지를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며 사회적 규약이나 법제도의 틀에서 어느 정도까지는 관용이 적용되는 강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구질구질하게 돈벌이 때문에 일상을 걱정 할 필요가 없기에 일반인들 보다 심적 부담이 덜 하다는것도 주요한 이점이 되겠네요.
28일의 시위에서 저는 비겁하진 않지만 이미 쇠퇴해버린 386정신과 노후화 되어 삐걱거리며 가쁜 숨을 헐떡이는 하드웨어를 확인했습니다. 또한 불의의 시종들에게 밀려서는 안되는 상황에서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과 다음 날 치러 내야 할 일상들이 한꺼번에 한 쪽 머리를 훑고 지나가며 동시에 입에서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악을 쓰며 다시 불러야 하는 386의 비애를 보았습니다.
제 나이 마흔 중반에 걸린 2008년 여름 어느날, "민주화"라는 사전적 의미마져도 머리 속에서 희미해져 가고 있을 무렵 느닷없이 나타난 내 딸아이 또래의 소녀 한 명이 촛불을 켜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말아 먹은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죽어가나 지켜보라"고. 그 아이를 사람들은 "촛불소녀"라고 불렀습니다.
아이야 미안하다. 하지만 꼭 다시 찾아다 놓으마. 잃어버린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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