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이라 빈둥거리다가 저녁 7시쯤 되니 촛불집회가 있다는 것이 생각나더군요.
대충 입고 있던 복장으로 시청 앞에 가서 빈 손으로 혼자 뻘쭘하게 서 있다가 이런 저런 분들을 만났는데, 시위대가 꼬불꼬불 이동을 하길래 그냥 무작정 따라 갔습니다. 근데 행렬이 을지로 입구를 지나서 한국일보 사옥까지 오더라구요. 청와대의 턱 아래까지 온 거였죠.
거기서부터 지리한 싸움의 시작이었습니다.
저녁 10시부터 경복궁 넘어가는 길을 막고 있는 버스 틈 사이로 시위대가 스물스물 기어들어 가더니 광화문에서 삼청동 가는 길 그 사이를 꽉 메워버렸습니다. 사람들한테 밀리고 밀리고 하다 보니 버스로 바리케이드 쳐놓은 곳 바로 앞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소리 좀 지르고 있으니, 물대포를 쏴버리더군요.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물대포라는 걸 맞아봤는데, 새벽이라 바로 오한이 돌더군요. 한번 쏘는 걸로 그치지 않고 몇번을 쏟아붓는데 물의 힘이 그렇게 무서운지 처음 알았습니다.
다행히 위시리님과 연락이 되어 광화문에서 동사하는 신세를 겨우 면한 주제에, 흥분이 가시질 않아 그 뒤로도 물대포 쏘는 것만 보면 일부러 달려들고 그랬습니다. 근데 뛰어가면 분사를 멈춰서 좀 싱겁긴 했습니다. 이래저래 대치하다 동틀 무렵이 되니 물대포를 좍좍 뿜어주시더군요.
경복궁 반대편으로 넘어가던 시위대들이 진압에 밀려 우리가 있던 위치까지 오게 되었고, 결국 인사동 입구까지 왔는데, 상황을 보니 그리 희망적이지 않아 오늘 저녁을 다시 도모하고자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좀 비겁하고 미안하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꾸준한 싸움을 위해서는 채우고 쓰고 채우고 쓰고를 반복해야겠다는 생각이었죠.
시위현장에서 느낀 것인데, 정부가 자꾸 국민의 똘레랑스를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이 분명하지만 허심탄회한 대화와 진실을 원하는 국민 앞에 갖다 놓는다는 것이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들과 공권력에 의한 탄압이니 말입니다. 삶에 대한 순수한 열망과 의지로 똘똘 뭉친 그러면서도 스스로의 행동론을 적절히 통제하는 대중에게 그들은 이미 져버린 게임을 지속하고 있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드네요.
정말 그들은 아직도 지지않았다고 믿는 것인지, 아니면 대중이 자신의 힘을 아직 과소평가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모두에게 공평한 은혜를 내려주는 시간은 누구의 승리인지를 분명하게 판가름 내주겠죠.
그 시간이 우리의 편이라는 것을 믿으며, 오늘 저녁 저는 다시 한 번 나가보렵니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나올 수 있는 분들은 주저말고 최대한 나와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얼마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끝이 우리에게 달콤한 열매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우리의 꿈을 위해 걸어가는 길에 있어서는 돌아가는 것보다 짧은 길이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