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워지려면 아직 멀었지만 시민들이 계속해서 모여들더군요. 시민들은 어린아이 키 높이의 간이단상 앞으로 줄을 지어 앉기 시작했어요.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있었고, 아이들 손잡고 온 주부도 있었지요. 어느새 청계천변 거리는 시민들로 가득 메워졌죠.
시민들은 각자가 준비해 온 양초를 꺼내어 종이컵에 끼우더군요. 여기 저기 촛불이 밝혀지기 시작했고요. 하나 둘씩 노란 촛불이 늘어나면서 흥겨운 노래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아리랑, 애국가, 2002년 월드컵 때, 이 곳 광화문에서 불려졌던 윤도현의 바로 그런 곡들이었죠.
여느 집회 때마다 불리우는 민중가요는 없었지요. 아쉬움을 가진 사람이 혹 있었을까요? 임을 위한 행진곡도 없었답니다. 귀에 친숙한 노래, 촛불을 든 사람들의 파도타기, 줄을 서서 기다려 단상 위에서 발언하는 시민패널이 전부인 소박한 집회였지요.
발끝을 세워 뒤쪽을 바라보니 촛불의 끝이 보이지 않더군요. 스피커 소리가 들리지 않는 뒤쪽 멀리까지 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었고요. 한 송이 커다란 노란 꽃이 청계천변에 핀 것 같이 아름답더라구요.
진행을 맡은 남녀 사회자의 목소리는 비장함보다는 유쾌함과 발랄함이 묻어 있었고요. 간이 단상에 올라 선 패널들의 목소리 역시 자신의 속에 있는 말을 거침없이 뿜어 내었지요. 때론 욕설이 포함되었지만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젊을수록 더 큰 박수를 받았지요.
아직 시험기간 중인데 이 곳으로 달려 왔다는 한 여고생은 찢어질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외치더군요.
"전~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도 가고 싶고요~,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광우병 걸려 죽으면~ 억울해서 어떻게 해요~~!!"
부모님이 모두 교사라던 한 남학생은 또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 엄마, 아빠 두 분 다 학교급식 똑같이 먹고 계신데요. 미친 소고기 드시면 안되거든요. 저 고아되기 싫거던요!!"
한편 이명박에 대해 욕을 해가며 성토하던 어떤 대학생 패널은 한미FTA와 소고기 전면 개방과의 본질적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똑같은 X니 같이 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참석자들에게서 "내려와!~, 내려와!~" 란 비난을 듣기도 했지요.
그래서 인지 순수한 집회에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참여한 사람들이 있으니 깃발을 든 사람들의 꾀임에 빠지지 말라며 A4용지에 그냥 프린트한 유인물이 돌기도 했고요. 주최 측의 순수성과 자발성과는 달리, 진보신당이나 극좌쪽에서는 장사하기에 좋은 장터처럼 여기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문함대도 현수막을 걸었더군요.
문화제 중간 중간, 틈만 나면 대형 확성기를 통해 종로경찰서장을 대신해서 알려드린다며 불법시위를 빨리 해산하라고 방송하더군요. 해산하지 않으면 사법처리 하겠답니다. 고사리손에 들려진 촛불이 불법이라니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불법시위를 주동이라도 했을까요?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었습니다.
"우리 지금 불법시위 아니거든요. 촛불문화제 하고 있거든요. 지금 해산하라고 말하는데 여기 해산할 데가 없거든요. 우리도 이렇게 많이 참석할지 정말 몰랐거든요. 아무도 폭력시위 하는 사람 없잖아요. 조금 있다가 끝낼테니 한번 봐 주세요."
그러면서 수고해 주시는 경찰 아저씨들한테 박수 쳐 주자고 한 뒤 참석자들과 함께 이런 구호를 외쳤지요.
"사법처리 무서워요!" "사법처리 무서워요!"
안타까울 정도로 순수하고 소박한 집회에 운집한 수 많은 시민들이 불법집회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과연 합법일까? 확률적으로 먹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독이 든 음식을 검역주권을 포기한 채 수입을 허용한 것이 정작 불법이지 않는가? 이렇게 되묻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국민주권을 행사하는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을 사법처리하겠다는 발상을 가진 사람이 과연 민주공화국의 정상적인 공무원일까요? 한 패널은 이렇게 외치더군요. "2mb는 절대 광우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웬지 아십니까? 뇌가 없기 때문이랍니다.ㅎㅎㅎ" 씁쓸한 웃음이 나오더군요.
어쨌든 30여년이라는 긴 세월을 독재타도, 민주쟁취, 탄핵무효를 외치며 이어졌던 거리 시위 문화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세대 교체가 이루어졌고, 특정 단체들의 주도적인 시위가 아닌 자발적인 시민 참여 시위 문화로 바뀌어졌습니다.
아니 그러고 보니 5.18을 비롯해 지금까지 대한민국 역사를 바꾼 모든 시위에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있었군요. 다만 그 때와 단순하게 비교하자면 절박하게 주권을 행사하는 시민들에게서 비장함 보다는 유쾌함이 느껴지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중심에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여성들이 있고요.
과거 정치적 참여에서 소외되거나 정치를 외면했던 당사자들이 지금은 그 주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아무 거리낌 없이 전달했고 학생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표현하더군요.
저는 중, 고등학생들이나 젊은 여성들이 갑자기 정치적인 성향의 사람들로 바뀌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지금도 그들의 행동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정치인이 국민들에게, 특히 여성들에게 먹는 문제를 건드린 것은 바로 역린(逆鱗)을 건드린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촛불문화제를 끝내고 돌아오는 횡단보도 앞에서 저는 한 무리의 젊은 여성들이 주고 받는 말을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되었지요.
"배고픈데 이제 뭐 좀 먹자." "언니, 치킨 먹으러 가요!" "그래 그거 먹으러 가자."
그들은 하나같이 가슴팍에 '미친소, 2mb 너나 먹어!'라는 글귀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수입소가 전면 개방된다면 앞으로 재앙에 가까운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검역주권을 포기한 나라에 뼈있는 소고기가 들어오면 시간이 갈수록 국민들에게 소고기 기피 현상이 일어날 것입니다. 앞으로 한우농가는 파산하고 한우는 천연기념물로 등재되겠지요.
그러다 AI가 발병하면 닭들을 모조리 죽여 땅에다 묻어야 하는데, 앞으로 치킨값이 많이 오르는 날도 오겠지요. 그러면 소고기를 치킨보다 싸게 먹을 수 있는 날도 오겠군요. 그렇게 되면 돈 없는 시민은 먹고 죽을 각오를 하고 소고기를 먹는 수 밖에요.(잠복기간 10년이니까)
좀 더 세부적인 후기는 다른 분들이 올리신 사진과 글로 대신하고요. 5월 6일부터는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촛불 문화제를 한다고 합니다. 얼마전 시민광장이 깃발을 들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말들이 많았는데요. 그 곳에 가면 들고 간 깃발도 내려야 합니다.
종이컵과 양초만 가지고 가서 그냥 한 사람의 시민으로 참여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아! 그리고, 여의도는 바닥이 차고 쓰레기가 많으니 엉덩이에 깔고 앉을 것과 쓰레기를 깨끗하게 수거해 올 봉투도 함께 준비하는 것 잊지 마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