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유시민 의원을 보았다. 외로워 보였다.
하는 말이 구구절절 옳지만 난파선에 있는 사람이 하는 소리가 국민에게 어떻게 얼만큼 전달될까 무기력함이 밀려 왔다. 연민이 쏟아졌다.
난파선의 책임을 온전히 혼자 져야 하는 상황이라면 아마도 그는 그럴 것이다.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아마도 그는 모두를 위해 기꺼이 죽을 것이다. 이미 사지에 한발 걸치고 있거늘. 문제는 누구를 위해 죽어야 하고, 내가 죽은 들 네가 살 수 있는 보장이 없다는 허탈한 사실이다.
사후대책을 세운답시고 모여앉아 나 살길부터 찾는 꼴들이란. 경선을 해도 우습고 안해도 우습다. 경선한다고 시끄러우면 볼장 다 보는 것이요, 대충 누구를 대표로 추대해도 우습긴 매한가지다. 그 얼굴에 그 얼굴이니까. 그 얼굴만큼 또 그렇게 갈테니까. 희망을 걸래야 걸 게 없다. 철저한 암담함만큼이 꼭 민주신당 현 모습이다.
국민은 실리를 원함이 분명해졌다. 국민은 가치를 버린 것일까, 가치와 함께 내 삶의 질적 변화를 요구하는 것일까. 두가지 다 이다. 이명박을 선택함이 옳은가와는 별개로 국민은 항상 영악했다.
산업화 시대엔 독재를 받아들였으며, 민주화 요구시기엔 그들과 함께 활화산이 되어 주었다. 딱 노무현이 필요한 시기엔 노무현을 선택해 주었다. 그리고 다시 이명박이란 인물을 선택했다.
국민은 우매하지 않다. 그들 스스로 무엇이 우선인지를 동물적으로, 본능적으로 포착하고 필요에 따라 거대한 물결을 이뤄 승리하는 길을 찾아 온 것이다. 과거의 영광에 휩싸여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은 소위 진보개혁세력 쪽이었다.
진보의 도덕강의는 이제 식상하다.
생산없는 탁상공론에 환멸을 느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국민의 실생활이 반영되지 않는 정책들은 공허하다. 가치는 가치대로 지향하되 영민하게 국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줄도 알아야 정치아닌가.

비근한 예로 지난 경선에서 유시민 의원이 말한 '멧돼지 잡기'작전 계획은 매우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아니나 다를까 종족수 보존 어쩌구 하며 진보쪽에선 여지없는 반발이 일어났고, 우익쪽에선 국민을 위한 부대를 우습게 본다며 길길이 날뛰었지만, 실제 실행되었다면 국민은 박수를 쳤으리라고 생각한다.
이게 성과주의일까. 실생활에 즉각 활용되는 정치로 환영받을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런게 안통하고 안먹힌다.
진보는 진보라서, 보수는 보수의 입장이 있어서. 실용은 유시민적 발상이 실용이다. 자기혁신도 못하면서 그저 상생만 찾는 게 실용이 아니다.(정동영의 실용은 이런 실용이었다)
아마도 이명박이 저런 공약을 내놓았다면 반발이 아주 적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명박답다 했을 것이다. 진보적 정치인으로서 같은 곳을 지향하는 사람들과도 때론 소통하기가 무척 어렵다. 어느 쪽에 함께 있다는 것이 때론 힘이 아니라 굴레가 되기도 한다. 이 모두로부터 자유로운 이명박은 확실히 시대의 행운아다.
부동산, 교육, 청년실업, 내수부진 이 네가지가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이에 대해 단순한 해법이 없으니까 세계가 그런 흐름이니까 이해해주세요로는 안되는 거다. 물론 정부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실효성을 느끼지 못한 국민은 다른 놈은 다른 해법을 내놓지 않을까 싶어서 정권교체를 선택한 것이고.
억울할 일이 아니라 진보개혁세력의 진정한 자기혁신이 일어나야 할 시점으로 받아들임이 현명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정치구호로는 그들을 묶어둘 수 없음은 자명해졌다.
국민은 이미 자발적이다. 세계도 놀랐다는 태안에 쏟아지는 인의 물결도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잖은가. 국민들이 너무 이기적이 되어 버려서 함께 나누는 세상을 잊어 버린 것이 아니잖은가. 국민은 그대로다. 변하지 않은 것은 정치권뿐이다.
한나라당은 눈에 띄도록 당을 정비하고 개혁해 왔는 데 비해 진보개혁세력쪽은 자기 개발과 혁신이 없었다. 민노당은 여전히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있는데도 그 문제를 의회안으로 끌어 오지 못했으며, 민주신당은 할 수 없이 대선용으로 만들어진 정당이니 이제 민주정통성을 얘기하기도 미안할 정도다.
미래를 헤쳐나갈 대안세력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오랜 유서의 한나라당을 선택한 국민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이대로 가다간 진보개혁세력은 쪽박차기 똑 참하다. 어제 유시민 의원도 한나라당 200석을 얘기했지만 어쩌면 그 이상이 나올 수도 있다. 비상도 이런 비상한 상황이 없는 것이다.
'선거에서의 지지가 국회에서의 점유 비율로 반영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국민의 선택이 국회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이합집산이 계속되면서 상호적인 무책임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국회에서는 이 선거구제의 개편에 논의가 필요합니다.'
유시민 의원은 토론 말미에서 독일식비례대표제나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을 논의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지만 내가 볼 땐 논의될 확률은 거의 제로다.
저 문제가 해결되어야 지향점이 같은 소수로서의 출발도 가능하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지금과 같은 국민과의 밀월시기에 미쳤다고 응하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의미 있는 사람들이 살아 남아 이명박 정권을 도울 건 돕고 견제할 건 견제'해야 하는데 이대로 가다간 모두가 죽게 생겼는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쓰는 내내 뭔가 결론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낼 수가 없다. 진보개혁세력의 살 길은 정녕 없는 것일까. 민주신당, 민주당, 창조한국당, 민노당 각각 아주 우스운 소수로 살아 남아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하는 것을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것일까. 대한민국이 한나라당에 전권을 주고 가도 괜찮은 것일까.
토론 내내 한층 여유로와진 곧 4선에 도전하는 남경필 의원의 모습이 그저 부럽게만 보였다. 오렌지라 놀리기도 했었는데 벌써 4선이래. 유시민 의원을 어떡해야 하나, 의식이 살아 있는 국민들은 억울한 희생양인 저 사람마져 정말 죽일 것인가 오히려 고민만 가중되는 토론이었다.
민주신당이 다시 국민의 신망을 얻기 위해선 정치주체들의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의 희생정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뭔가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낡고 구태스러운 얼굴들은 치우고 국민과 호흡할 수 있는 신선한 얼굴과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대로 가다간 너나없이 모두 죽는다.
난국해결의 총대를 누가 메어야 할까. 차마 갈라서지도 못하고 스스로 죽을 수도 없다면, 차라리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유시민 의원에게 당의 전권을 주고 총선결과에 책임지라고 하든가. 허망한 바람만 가슴 한가득 밀려왔다... 그래서 토론을 보는 내내 나는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