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경 이야기
개혁당의 초대 '조직국장', 김태경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5년 전입니다. 2002년 여름, 막 만들어지고 있던 개혁당. 그는 중앙에서 조직을 담당하는 실무 추진위원이었고, 새벽은 지역에서 무명 참여개미의 한 명이었던 것이 '우리' 인연의 시작이지요.
불과 몇몇이 마치 도원결의 하듯 만들어 냈다는 개혁당, 초대 조직국장 김태경은 그 몇 안 되는 의기투합 가담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지금껏 물어 본 적은 없었지만, 전 당원 인터넷투표로 선출된 초대 당대표 유시민과 김태경의 만남도 개혁당 인연인 것으로 압니다.
'무늬만' 노사모였던 새벽, 개혁당에서는 달랐죠. 어찌어찌 하다 지역 '번개'를 나가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또 어찌어찌 지역일꾼 이름표 하나를 덜컥 받아 든 것이, 후에 지구당 위원장까지 이어지게 된, 돌이켜보면 정말 아찔한 '참여'의 시작이었다지요.^^
지역위원회(개혁당에서는 지구당을 처음에 이렇게 불렀죠) 일 때문에 중앙당과 종종 연락이 있었지만, 그 때의 대화창구는 이미 김태경으로부터 자리를 인계받은 김영수 조직국장(현 유시민 의원 정무보좌관)이었습니다. 개혁당이 우리당 참여(창당)를 위하여 스스로를 해산시킬 때까지, 김태경, 그와 새벽의 소통은 '띄엄띄엄'이 맞을 겁니다.
개혁당이라는 한 울타리 속 이심전심의 애정이 명확할 뿐, 새벽에게는 적당히 친절한 사람이었다고나 할까요. (뜻밖에도 그는 처음부터 새벽이 남 달랐다고 하더군요. 아주 나중의 일입니다만, 때로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가 되던 무렵에 비로소 들려주는 이야기인즉, 틈날 때마다 우리 지역게시판을 찾아 새벽의 글을 보는 것이 개혁당 시절 큰 즐거움이었다 하더라구요.^^;; 당시의 새벽, 중앙에는 거의 글을 쓰지 않았지만 지역에는 최소 하루 걸러 하나 정도씩 왕성하게 글을 적곤 했었답니다.)
걸어다니는 '시민토론방', 김태경
2003년, 덕양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그는 유시민 후보 캠프의 총괄책임자가 되었습니다. 잘 알고 계시듯, '다시 찾은 10년' 동안 재보궐선거라는 것은 예외 없이 '집권야당' 한나라당의 잔치죠. 하지만 그는, 당시 지역 유권자들에게는 그다지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새내기' 정치인 유시민을 거뜬히 당선시킵니다.
이제 그는 유시민 의원실의 수석보좌관이 되었죠. 덕양 보궐선거 이후 2007년 대통령후보 경선까지 5년여 계속된 김태경 보좌관 시대입니다. 유시민 주식회사, '넘버 원'인 '대표이사'는 당연히 유시민이죠. 국회의원 유시민의 정무보좌관 김태경, 새벽은 5년 동안 그를 유시민의 '집사' 혹은 유시민 주식회사의 '넘버 투'로 불렀습니다. 명실상부하게 그러했기에 새벽만 그를 그렇게 대한 것은 아니지요. (집사라는 말을 듣는 것을 그가 그렇게 좋아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유빠들 만나면 한결 같은 말이 우리 시민님 잘 모셔달라는 말만 한다나요.ㅋㅋ)
2002년 대선 승리 후, 이듬 해의 재신임 정국 속 우리당 창당, 이어진 대통령 탄핵, 그리고 2004년 4.15 총선으로 이어지던 시기. 개혁의회 쟁취 없이는 개혁청와대도 꽝~ 이라는 유시민 대장님의 교시(^^)에 따라 새벽도 왕성하게 '참여정치' 하던 때입니다. 우리 지역 노사모 개혁당 그룹은 우리당의 대의원 지분 1/3 이상을 항상 쥐고 있었지요.
정당이 늘 그렇지만 중앙과 지역의 초대 지도부 선출에서 4.15 총선 공천까지 우리당 내의 정치적 의사결정 또한 숨 가쁘게 이어지던 그 시기. 하지만 개혁당은 이제 없고 참정연도 아직 없던 시기(물론 시민광장도..^^). 넘버 투 김태경의 주요 활동 중 하나가 유시민 전국구와 '맨투맨으로' 소통하는 것이었음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유시민과 유빠를 잇는 인간 메신저였다고나 할까요.. 이심전심 만으로는 부족한 곳을 채우기 위해 암약하는.^^;; 표현이 좀 뭣하지만.. 걸어다니는 유시민의 '공지사항' 혹은 찾아가는 '시민토론방', 김.태.경.
그 즈음, 지역의 젊은 '개혁유지'가 되겠다며 방방거리던 새벽이 그에게는 최소한 변방의 '왈왈구찌' 정도로는 보였던지..^^;; 아마도 그의 맨투맨 서비스 리스트에 포함되었던 것이, 이전까지보다는 한결 '은밀한' 만남의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인연이 몇년을 두고 이어지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 했던.
여의도의 유일한 '재선보좌관', 김태경
'은밀'이라고 하니 먼가 끈끈한 '거래'라도 이루어 졌으려나.. 혹시라도 '큰' 상상 하시는 분들이 있을까 싶어 말씀드리면 뭐 별 건 없고요.. 어느날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와서는 1분 브리핑.. '이거 알고 계시죠?' 혹은 '잘 하고 계시지만 더 잘 하셔야 됩니다.' 정도이고, 만약 불쑥 찾아온다면 이건 먼가 아쉬운 게 있을 때죠.^^;;
새삼 떠올려보니 처음 그가 새벽의 회사 앞으로 찾아왔던 것이 우리당의 초대 지도부 선출 전야입니다. (그러고보니 유시민이 '대세와 원칙'을 위해 정동영을 지지했던 적, 딱 두번이군요. 우리당의 초대 당의장 선출 때와 2007년의 1219 본선. 새벽.. 한번은 따랐고 한번은 따르지 않았네요.)
4.15 총선이 끝난 직후에는 참정연 건설을 위한 기획모임에 새벽을 일꾼으로 초청하기도 했습니다. 의원들과 개미들이 함께 뒹굴면서 놀다가 공부도 하는, 소속 정당 지지 정당에 관계 없이 무당파도 함께 할 수 있는 대중적 시민모임, 저마다의 관심화두를 쪼개어 놓고 즐겁게 토론하며 필요하면 정책도 만들어낼 수 있는 참여정치 시민모임. 그런 것 한 번 만들어보자며 무척 즐거워하더군요.
참정연 사무실을 계약하더니 새벽을 불러 이 방은 피씨방, 저 방은 밥도 먹고 잠도 잘 수 있는 워크샵방.. 자랑을 하던 그의 모습이 아득한 듯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 저녁, 시민님을 만난 지 2년여만에 처음으로 함께 둘러앉아 식사를 했지요. 총선 이후 처음 뵙는 자리였고 개혁의회 쟁취의 기쁜 여운 또한 남아있던 무렵이기에, 새벽, 시민님께 축하인사를 드렸지요. '과반수 제 1당도 기쁨이지만 무엇보다도 재선의원 되심을 축하드립니다.' 했는데, 유쾌해진 시민님의 덕담 릴레이는 김태경 보좌관을 향하더군요.
'재선보좌관 되신 것 축하해! 김태경.'
시민님다운 보충설명이 좌중을 향해 이어졌습니다. '재선의원의 보좌관이라는 뜻이 아니고, 나를 두번 당선시킨 보좌관이란 말이야. 한명을 두번 연속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낸 장기집권 재선보좌관, 아마 17대 여의도에 김태경 밖에 없을 걸.'^^ (실제로 여의도가 그렇습니다. 재선은 고사하고 한 국회의원을 임기 내내 지키는 보좌관과 비서관 드물죠. 의원부터가 대략 그렇게 잘 안하더군요. 물론 우리 시민님은 특별한 예외의 스타일이지만.^^)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새벽이 그에게 먼저 연락하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당게나 서프를 이용해서 공개적 은유적으로 전달했지요.^^ 확실하게 만날 때는 우리당의 전당대회, 그리고 참정연의 총회나 송년회 정도입니다. 그럴 때면 오랜만에 천막 아래에서 함께 국수를 말아 먹으며 '궁물' 어린 소통을 하죠.^^;;
2004년 참정연 송년회 때는 그에게 우리 대장님 4.2 전대에 출마 좀 하시게 하자고 보채던 기억이 나고, 시민님이 장관으로 입각한 직후의 2006년 2.18 전당대회 때는 정말 이대로 의원님 홈페이지 문 닫으면 안 되는 것 아니냐 따져 묻던(^^) 씬도 떠오릅니다.
2007년이 되었습니다.
그와의 만남이 부쩍 잦아지더니 급기야는 한 지붕 아래에서 일을 하게 됐죠. 매일 얼굴을 보면서. 비록 오래 지속되지는 못 했지만.. 대통령선거 경선후보자 유시민 선거사무소(캠프)입니다. 김태경, 그는 5년 동안 장기집권했던 정무보좌관의 이름표를 막 청와대를 정리하고 나온 김영수 수행팀장에게 물려주고는, 유시민 캠프를 총괄하는 '종합상황실장'이 되었습니다.
그와의 소통은 늘 유쾌했지만, 2007년 9월 15일, 그와의 만남 이후 처음으로 울음이 묻어나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밤, 여의도 시민광장 사무실 앞 호프집. 당희, 겨란한판, 볼의 통곡소리(그만 좀 울으라는 이웃집의 항의까지 받았어요.^^;;)와 옴쥐, 초록별, 나비효과의 흐느낌을 곤혹스럽게 달래고 있는데 새벽의 폰이 울리더군요.
뜻밖에도, 비행기를 구하지 못해 혼자 제주도에 남겨져 있다는 김태경 실장의 전화였습니다. 이미 화면에서 후보 사퇴를 선언하신 시민님이 그를 끌어안으며 서로를 달래는 모습이 전해진 후이기에 어떻게 마음을 추스리고 있을 지 싶었을 뿐.. 사실 그와 새벽이 그 순간 어떤 말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
서로 말 없이 잠시 뜸을 들이고는.. 술을 조금 마신 것 같기도 하고, 잔뜩 울고 난 것 같기도 한 목소리로 그가 반복해서 말하더군요.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이 사람 하고는.. 참.. 무어라 할 말이 없더군요.. 새벽보다는 훨씬 크게 감당하고 있을 그의 상실감과 서러움이 전해져 올 뿐.. 새벽은 그저 저절로 한 마디만 건넬 따름이었죠.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나는 괜찮습니다.'
국회의원 '후보', 김태경
이해찬 캠프의 '모바일 홍보대사' 유시민 기획 및 주연, 극본 및 제작에 새벽의 '폰투유' 영상 1탄, '캠프가 망했어요'를 함께 촬영하던 캠프 해단식. 우리 식구들에게는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당혹스러운 페이소스만이 가득했던 그 자리. 늘 캠프의 공식 사회자였던 그는 그 자리에도 참석하지 못한 채 며칠을 더 제주에 머물렀습니다. 여전히 비행기를 구하지 못한다는 것이 알리바이였지만 정말 그 이유 때문만이었는지는 아직도 물어보지 않았네요.
사퇴 직후 시민님은 뜻밖의 선언을 하십니다. (17대와는 완전 반대로) 누구보다도 가장 빠른 18대 대선 출마는 그렇다 하더라도, '정말로' 대구 출마 공식선언이었죠. 새벽에게 저절로 떠오른 생각 중 하나가 그렇더군요. 이제 무관이 되어있는 김태경, 그는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 당연히 따라가는 건가? 지난 5년간.. 너무나 익숙하게 지켜보았던 유시민 주식회사의 넘버 투 혹은 집사, 김태경이었기에 당연한 듯 싶으면서도 어쩐지 예감처럼 이번에는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던 거지요.
그로부터 한 달 후, 경선 뒷풀이까지 모두 마치고, 다시 또 한 달여가 지나도록 그와 새벽 사이에 별 다른 말이 오가지는 않았습니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았어요.
그러던 어느날, 또 한 번 뜻밖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2008년이면 그의 새로운 이름표가 마침내 '김태경 후보'가 된다는 소식이었죠. 기쁜 소식인데.. 이상하게도 그 밤 이후의 안쓰러운 느낌이 가시지 않더라구요. 며칠 동안을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정말 오랜만에 그에게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혼자 잘 할 수 있을런지.. 새벽이 이대로 있을 수야 있겠나.
(새벽) 새벽한테는 미리 말도 안 해주고 말야.. 새벽, 대략 삐짐입니다.
(태경) 네.. 허허
(새벽) 어디야? 덕양?
(태경) 네..
(새벽) 오오~ 역시. 지켜 낼 자신 있는 거지?^^
(태경) 아..네.^^;;
(새벽) 음.. 그 모냐.. 지난 5년간 말아먹었던 사업, 인제는 완전히 조져서 지원해드릴 후원금은 없구여.. 대신에.. 홈페이지나 어떻게 해드릴께
(태경) 아..네.. 모.. 제 홈페이지에 누가 그렇게 많이 들어오겠습니까만..^^;;
계면쩍은 듯.. 굳이 그렇게 해 주면야 고맙기는 하다는 척 했지만.. 나중에 다른 사람이 전해주는 이야기로는 실은 무척이나 좋아하더라네요.^^ 앞으로 혼자 이 일을 어떻게 꾸려내나 사실은 걱정이 잔뜩인 거죠. 더구나 5년간 만나오던 유빠들이야 모조리 대구에 올인할 게 뻔하니 말입니다.^^;;
또 한 명의 '유시민', 김태경
얼마 전, 오랜만에 그를 만났습니다. 지난 5년간 유시민 사무실이 있었던 덕양 화정벨트의 한 작은 오피스텔. 일꾼들과 모임을 가질 장소는 있어야 하기에 그날 계약해서 막 입주했다고 하네요. 앉은뱅이 책상 하나 외에 아직 아무 것도 없더군요. 물었습니다.
(새벽) 왜 출마했습니까? 유권자들에게 뭐라고 설명할 겁니까?
뜻밖에도 아주 시원시원한 대답이 돌아옵니다.
(태경) 5년 후, 기필코 유시민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지역 유권자들에게도 그렇게 말할 겁니다.
김태경 후보의 도전이야 축하할 일이지만, 솔직히 내심으로는 그의 결핍으로 우려되는 시민님 '수성대첩' 걱정도 한 시름이던 무뇌유빠, 단숨에 기분이 편해집니다.^^ 거침 없는 출사표가 계속 이어집니다.
김현미의 '5명' 비아냥, 단숨에 날려버려야 안 되겠습니까? (시민님 말 마따나 '돈도 없고 조직도 없고 유명인사도 없는' 유시민 캠프, 금뺏지는 시민님 포함 딱 5명이었죠.ㅡㅡ@) 말 그대로 유시민 대세를 위해 유시민 세력 구축하려면 도전할 수 있는 사람 모두 승부 걸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오로지 개미만으로야 되겠습니까? 1800미터 활주로, 친유 교섭단체는 만들어내야 이루어지는 것 아니냐 이겁니다.
금새 함께 뜨거워진 원래 냄비 스타일 새벽..^^;; 신이 나서 맞장구 칩니다.
맞죠. 마음 같아서야 2008년 총선에서 유시민 사단이 마침내 그 모습을 처음 국민에게 드러내고, 2010년 지방선거 때는 시민광장에서도 기초 광역 합쳐서 한 100명만 당선되었으면 하죠. 그게 새벽이 말하는 참여정치 시즌2라니깐요. (방방~) 근데.. 의원님께도 그렇게 말씀드렸나요?
네, 잠시만 떠났다가 곧 돌아오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대장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 보다 힘 있는 참모가 되어 돌아오기 위해서라고 보고드렸습니다. (시민님.. 웃음으로 끄덕여 주셨다고 하네요.^^)
9월 15일 이후 2달여 동안, 그 동안에 대하여 좀처럼 말을 하지 않던 그가 딱 한 번 감정을 드러냈던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 이제 다시 친노재건과 정당개혁을 언급했을 때죠. '친노? 그들이 정당개혁을 말할 수 있을까?' 한 번은 또 답답해하고 억울해하는 새벽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한 마디 건네더군요. '상층의 힘이 전혀 없어서에요..'
늘 역풍과 모함의 두려움에 습관처럼 할 말 삼키고 눈치 보며 사는 것, 개미 유빠들만의 이야기 아닙니다. 여의도의 왕따로서 넘버 투가 겪어내야 했던 눈치와 견제, 그 서러움의 세월이 어느새 몇년이었던 거죠.ㅡㅡ@
새벽 5년만에 처음으로.. 김태경, 그가 더 이상 우리 대장의 집사가 아니라 우뚝한 한 명의 '정치인'으로 다가오면서 새삼 그를 대하는 느낌까지 달라지더군요. 원래부터 정치인이었는데 말입니다.^^;;
이제 유시민 주식회사의 넘버 투가 아니라 유시민 계열사의 대표이사가 되어 유시민 그룹의 넘버 투가 되려고 하는 김태경 후보님, 반드시 승리하시어 더 듬직한 모습으로 이제 유시민 회장님(^^) 곁으로 돌아오실 것으로 믿으렵니다.
2008년 4월, 유시민 그룹의 탄생을 위하여 전국 곳곳에 '문어발처럼' 유시민 계열사를 창업하실 수많은 예비 대표이사님들께도 똑같은 믿음과 아낌 없는 격려를 보냅니다.
유티즌 여러분, 모쪼록 한 마음으로 이 전사들의 승리를 소망하고 그 여정을 성원해 주실 것으로 굳게 믿습니다.
한명 한명의 전사가 모두 유시민이니까요.
끝으로 김태경 후보님, 시민님의 정치적 고향, 덕양. 꼭 지켜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