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17대 대선. '대통령선거'가 아니라 'BBK선거'로 불리울 정도의 최강 네거티브 선거전이었습니다. 여론조사가 진행된 1년 동안, 단 한 명의 후보가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뺏기지 않은 첫 대선이었습니다.
5년 전, 최고의 흥행은 노무현과 이인제가 격돌한 민주당 경선이었지만, 2007년, 최고의 흥행은 박근혜와 이명박이 충돌한 한나라당 경선이었습니다. 5년 전, 노무현과 정몽준의 단일화는 최고의 드라마였지만, 2007년, BBK 진실게임이라는 최고의 코미디만이 있습니다.
1년 반 전, 5.31 지방선거에서 탄생한 전대미문의 캐치프레이즈. '무능보다 부패를 선택' 하겠다는 범 국민적 캠페인(혹은 유사메시아 증후군)은 마치 가파른 비탈길에 굴리는 눈덩이처럼 날이 갈 수록 커지고 깊어만 갔습니다.
그리하여 그 1년 반 만에, 마침내 한나라당은 신이 내린 정당이 되었고 이명박은 신이 빚은 후보가 되었습니다. 범 국민적 부패불감증과 도덕의 치매.. 국민들의 하해와 같은 관용은 이제 그 한계를 측정할 길이 없습니다.
2.
2007년 대선. '과연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가 아니라 '정말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느냐?'입니다. '누구를 찍느냐'가 아니고 '이명박을 찍느냐 마느냐'입니다. ('아니면 누구를 찍느냐'는 솔직히 관심도 아니고 별 의미도 없습니다.)
1년 전부터 1년 동안, 이 무대의 주인공은 오로지 이명박 단 한 명 뿐입니다. 주연급 조연이 딱 한 명 더 있으니 두 말 할 것도 없이 박근혜죠. (이명박은 신내림패, 박근혜는 꽃놀이패를 쥐고 있답니다.)
'우리' 후보는.. 주연도 아니고 조연도 못 됩니다. 기호 1번은 행인 1.. 5년 동안에 걸친 퇴행의 댓가를 지금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그만하면 충분합니다. 거기까지면 됐습니다.
개혁(혹은 진보)의 존립근거는 부패(혹은 수구)가 아닙니다. 일단 한나라당의 집권만은 막아보자.. 이 얼마나 초라한 정책이고 왜소한 구호입니까. 반한나라 서부벨트가 얼마나 허망한 정치공학인지 이제 개념이 잡히십니까.
스스로 빛을 만들지 못하면 절대로 어둠을 이길 수 없습니다.
3.
9월 15일 이후 (정확하게는 뒷풀이까지 모두 마친 10월 15일 이후) 새벽.. 대선에 관해서는 말은 있어도 글은 적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설레이며 기다렸던 것이 이토록 쓸쓸하게 찾아오는 1219는 아니었기 때문이죠. 그래도 결국 그날이 오면서 모두들 한 말씀씩 하시기에 새벽도 그저 한 말씀 드리는 것 뿐입니다.
그저 궁금함이 있다면 투표율 정도입니다. (형편 없는 투표율에 한 기여 하는 것도 훌륭한 '참여'라는 것이 새벽의 솔직한 심정이죠.. 50%도 넘기지 못하는 첫 대선이 되어 얼마나 참혹하고 부끄러운 선거였는지, 그날을 떠올리는 모두에게 두고두고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정작 머리 속에 그려지고 가슴 속에 담아내야 하는 것은 1219 이후입니다.
1219 전야에 이른바 '이명박 특검법'이 통과되면서 모두에게 한 가지 관심 정도는 더 생겼습니다. 신내림패를 쥐고 있던 사람이 그예 당선자가 됩니다. 수사를 했더니 유죄가 명확해져서 기소까지 했다고 하십시다. 취임일인 2월 25일 이전에.
과연 취임 이후에 재판이 잘 진행되어 당선무효를 확정할 수 있을까요? 외신들이 짐작하듯.. 국가통치의 불안정, 한국정치의 불확실은 커질 수 있겠지만, 새벽 생각에는.. 공소 유지조차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선수'들의 관심은 아마도 '대선 다시' 보다는 '총선 어떻게' 입니다. 몇 개의 당 중에 어떤 당에서.. 그 쯤이겠고, 과연 특검이 그 새로운 정치지형 정립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가.. 뭐 그 정도.
4.
거짓말처럼 다시 찾아 올 낯설은 현실.. 오래 전 기억에서 되살아 날 낯익은 한기.. 하지만 어떻게든 우리가 감당해야 할 햇겨울. 어쩌면 2년여.. 혹은 그 이상 계속될지도 모를 겨울공화국은 이제 '그분'과 '우리'의 몫입니다. 아마도 12월 19일이면.. 12월 19일부터의 세상을 헤쳐가야 하는 '그분'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할 겁니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4월 '그날'까지가 겨울공화국의 1막이 되겠지요.
우리가 다시 씩씩해지기까지, 처음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지도 모릅니다. 다시 스스로 즐거워지고 서로를 유쾌하게 만들어내기까지, 필요하다면 자책도 하고 때로 불행해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겁니다. 그럴 틈도 없습니다. '되돌아 가지 않는 역사'를 굳게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그대로 허망하게 되돌리고 말기에는 오랜 싸움과 승리의 영광이 너무도 생생한 사람들이니까요. 진짜 '기적'은 그때부터입니다.
겨울공화국 1막 4장, 2008년에도 어김 없이 봄은 찾아 올 것입니다. '그날' 우리, 또 한 번 '춘래불사춘' 할 것인가. 안간 힘으로 언 땅에 싹을 틔워 끝내 '기적'의 열매를 맺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