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날씨보다 마음이 춥다
대선 여론조사를 공표할 수 있는 시기도 지났다. 이대로 가다간 단 한 번의 반전도 아니 제대로 긴장 한 번 못 느끼고 1219를 맞게 될 것만 같다. 결국 개혁세력은 이렇게 무너지고야 마는가. 참담한 기분이다. 그러나 어쩌랴. 다수결의 원칙, 그것 말고 민주주의를 규정할 더한 어떤 정의가 있는지 난 모른다. 많은 사람이 가자 하면 가는 것이 민주주의다. 소수에 대한 존중은 승자 독식의 대선 투표에선 아무런 의미도 없다. 불행하게도 이번엔 우리가 그 소수다.
이유야 어떻든 2007년 12월 대한민국은 원칙과 상식, 도덕성과 공정성이 일시에 무너져 내리면서 지독한 갈등과 혼돈을 겪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한나라당과 이명박보다 훨씬 덜한 원칙과 상식의 못마땅함에 대해 누군가 끊임없이 비난할 수 있는 자유를 주장한다면 나는 그 행동양식에 대해 사치라 이름할 수 밖에 없다.ㅜㅜ.
투표를 않겠다는 사람, 정동영을 찍자니 영 내키지 않는다는 사람, 차라리 이명박이나 이회창을 찍겠다는 사람, 인정하기 싫은 현실에 대한 최소한의 저항일 수도, 거부해도 바꿀 수 없음에서 오는 나약한 도피일 수도. 광풍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소수로서의 자부심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유시민 의원을 핑계 삼지 않아도 정동영을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는 많다. 정동영의 등 뒤에 서 있는 전체 개혁세력의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유시민 의원을 방패삼아 마지못해 어정쩡 지지하기엔 지나 온, 다가 올 역사에 대해 우리가 이것밖에 못하는 가에 대한 한없는 죄스러움과 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몸보다 마음이 훨씬 추운 이유다.
세상은 이미 한나라당 천하
5.31 지방선거 이후 지방의회의 분포를 보자. 한나라당은 제주와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의 광역단체장을 석권하고 있고, 기초단체장의 3분의 2, 광역지방의원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가 생겨 보궐선거를 해도 또 그 당 사람들이 뽑힌다. 정말 대책 없는 세상이다. 지방권력은 이미 한나라당의 일당 독재체제나 마찬가지다. 이렇듯 견제받지 않는 지방의회는 또한 도덕적 해이로 국민의 냉담한 눈총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수수방관하다 청와대마저 내 주고 밀월기간의 총선마저 내 주면 그 뒤에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보다 더 큰 허무와 냉소, 자조와 무기력에서 견딜 맷집이나 미리 키워둬야 할까. 지독하게 무너지면 위기를 절감한 개혁세력들이 활화산처럼 봉기라도 할 것 같은가. 가까운 시일내 봉기할 리도 없지만 한 들 뭐할 건데. 지나간 버스에 처량하게 손 흔들기일 뿐이다. 모든 것엔 때가 있다.
정말로 정동영이 이명박보다 싫은가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고 무언가를 말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광장에서 정동영에 대한 소극적 아니 할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지지처럼 표현함은 왜일까. 우선은 깔끔하게 정을 지지하자니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혹시 회색? 하는 눈총이 두렵고, 스스로도 정치개혁을 신념삼아 참여한 입장에서 왠지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 같은 자괴감이 들기 때문이다. 쿨하게 '정동영을 지지합니다'라고 선언하기 어려운 이유다.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 보자. 어차피 맘에 드는 후보도 없는데 죽써서 개에게 준들 어떠랸 맘이 있을 것이다. 차라리 어디선가 힘있는 돌이 날라와 박힌 돌을 빼주기를 바라는 맘도 있을 것이다. 어쩌다 저넘보다 이넘이 더 밉게 되었을까 때론 곤혹스럽기도 할 것이다. 고사성어는 옳다. 가화만사성, 수신제가치국평천하. 개혁세력내 불화는 정동영의 업보임은 분명하다.
화풀이로 초가삼간 태울 순 없어
그러나 아무리 만신창이 된 집안이라도 팔은 안으로 굽어야 순리다. 그래야 우리 스스로를 보살필 수 있고 추스릴 수 있다. 어찌 전부가 아니면 전무가 오히려 낫다 하는가. 유시민 의원의 얼굴을 보아서가 아니더라도, 정동영을 지지하는 보다 나은 사회를 꿈꾸는 제 세력들이 전멸해서는 안된다는 당위성만 인정한다 하더라도 정동영 지지는 순차적으로 당연한 것이다. 우리가 박사모처럼 할 순 없는 것 아닌가. 굳이 자학하지 않아도 된다.
자존심 구겨질까 갈등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의 유시민 의원은 이런 코멘트를 이미 준비해 놓았다. 세심도 하시지. '대통령 선거는 어떤 자연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맡아서 국정을 운영할 정치세력을 선출하는 일입니다'라고. 그러니 '당당하고 자신있게 정동영 후보를 지지해 주십시오'라고.
흡족하고 자랑스럽진 않을지라도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건재한 한, 이 악물고 눈물을 머금고 죽지 못해 찍어야만 할 정도로 정동영이 문제있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 후보를 절대 평가할 것인가 상대 평가할 것인가, 단독 평가할 것인가 제 세력들을 함께 보고 평가할 것인가 자문하면 해답은 이미 뻔히 나와 있기도 하다. 단지 인정하기 싫을 뿐.
그러니 어쩌라고! 상처 없는 영혼은 없다
집안 싸움과 바깥 싸움은 구분하자는 얘기다. 자존심? 방관하거나 지리멸렬하게 확실하게 죽어 주는 것이 자존심을 지키는 길은 아닐 것이다. 최악으로 대선을 내주더라도 의미있는 표를 얻어야만 민주개혁세력이 총선에서 일정 부분의 의회권력이라도 확보할 것 아닌가. 대선에서 참패하고 총선 필패하면 향후 공룡 한나라당을 누가 어떤 힘으로 감시하고 견제한단 말인가. 치욕의 세월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밥맛 없다고 차라리 몽땅 굶어 죽을 순 없는 것 아닌가.
고작 열여덟살에 랭보는 이렇게 말했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정호승 시인도 말했다. '상처가 스승'이라고. 우리당과 민주신당 경선을 거치며 정동영과 제 세력들로부터 받은 상처는 아프다고 내지름보다, 다시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반면교사로 삼을 과제일 뿐이다. 승자에 대한 원망과 비토가 우리를 저절로 강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우리 스스로 유연하고 강해져야 한다.
나홀로 문국현, 할말 없는 이인제
무임승차도 비난받을 행위지만 승차마저 거부하면서 개인플레이를 하고 있는 문국현은 개혁세력이 끝내 찢어진 채 이대로 대선을 맞는다면 민주개혁진영 전체에 큰 빚을 지게 된다. 현실정치를 할 생각이라면 독불장군식으로 해선 안되는 거다. 2~3%의 지지율을 얼마나 더 의미있게 평가해 줘야 하는가. 오만도 적당할 때 아름답지 지나치면 짜증나는 법이다.
민주당과 이인제에 대해선 뭐라 더 할 말이 없다. 알아서들 역사적, 시대적 역할을 다 하길 바랄 뿐...;;
선택은 기호 1번 정동영
투표일까지 겨우 5일이다. 원망과 무기력에 빠져 현실을 오독하지 말자. 죽더라도 찍소리도 못하고 죽을 순 없는 것 아닌가. 개혁 정치세력의 재생, 부활의 싹수만은 남겨둬야 할 것 아닌가. 투표율이 낮다면 스코어는 더 처참할 것이다. 투표는 반드시 해야 한다.
사회 개혁과 변화 발전을 도모하는 세력들이라면 위기의 현실에서 우리가 해야 할 역할과 의무는 하면서 새로운 때를 기다림이 마땅하다. 스스로 1번을 선택할 수 밖에 없으면서 자존심 때문에 유시민 의원의 얼굴 뒤에 숨는 핑계는 그만 대자. 왜 자꾸 그에게 빚을 지우는가. 미안하고 조금은 비겁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이 모욕적인 상황만큼이 대한민국에서 소위 개혁세력들의 힘의 현 주소일 뿐이다. 우리도 오만하지 말자.
눈을 크게 떠 현실을 직시하면 정동영에게 들이대는 상식과 원칙의 갈등이란 말들이 꽤 사치로 느껴질 것이다. 아무렴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그것에 비하겠는가. 이제 깊은 허무와 냉소의 옷을 벗을 때가 왔다. 그대들의 변치않는 맑은 영혼과 현실과 악수하는 냉정한 이성에 부디 하늘의 가호가 있기를 바란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