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일이면(아니 12시를 넘었으니 오늘이군요...) 국토관리청의 현장점검이 있는 날입니다. 정말 하루가 48시간쯤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하루 1편씩 박무님을 지지하는 글을 올리고자 하였으나 결국 지금 써내려가는 두 번째 글이 마지막 글이 될듯합니다. 해서 감정 빼고 정말 잘 써서 마지막으로 고민하시는 분들의 선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나 또 이 글이 끝나면 자료준비를 해야 하는 관계로 머리가 지끈거리는걸 보니 애초에 포기하고 그냥 진솔하게 써보려 합니다.
2005년 4월 30일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선거 결과는 참담한 패배로 막을 내렸습니다. 선거 기간 동안 분위기가 너무나도 좋았기에 나름 기대를 했었지만 결과적으로 또 몰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저는 그때의 신명나는 자봉을 웃으며 기억할 수 있습니다. (경북에서 재보궐 선거가 치러졌던 세 지역 모두 접전끝에 무릎을 꿇었으니 경북지역임을 감안할 때 대단한 사건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 기억 속에 박무님이 있고, 한걸음님이 있고, 가아넷님도 있습니다. (그때 함께 해주신 분들을 한분 한분 기억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뭐 지금도 별반 다를 것은 없지만 선거전의 분위기라는 것이 5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여기저기서 또렷하지 않은 확성기의 출력을 최대로 높여 장보러온 시골 어른들의 발길을 잡아보려 애써 보지만 시선은 냉담하기만 합니다. (물론 그네공주가 떳다 하면 발 디딜 틈도 없을 만큼 차기는 합니다만...)
우리 대장님이 경북이 고향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경북지역 선거지원을 책임지고 상주하시며 장터로 들판으로 동분서주 하며 유권자들의 마음을 훔칠 때 주말이면 대장님을 지원하고자 서울, 경기지역에서 10여분이 내려와 영덕으로, 영천으로, 경산으로 열심히 춤판을 벌이니 첨에는 ‘저것들이 미칫나?’ 하던 분들도 한 번 보고 두 번 보는 사이 어느새 박수를 쳐주십니다.
우리당 후보의 유세가 마무리되고 신나는 음악에 맞춰 마무리 율동을 할 때는 장보러 오셨던 어머님들도 함께 어깨를 들썩이고, 대포집에서 막걸리잔을 기울이시던 아버님들도 덩달아 어깨춤을 출때는 발바닥에 물집이 터져 쓰라렸지만 정말 힘든줄 모르고 어르신들의 손을 잡았더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캠프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 듣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우리 대장님에게 까지도 캠프에나 복잡한 시내에서 홍보하기 보다는 시골에서 농사일 하시는 분들을 찾아 다니며 홍보해 줄 것을 요구하며 이른바 ‘따’를 시켰으니 그 밑의 똘마니 정도로 생각하는 저희들에게야 오죽 했겠습니까.
하지만 먼곳에서 오신분들은 싫은 내색조차 않으시며 “누가 알아주길 바라고 오는 이들은 아무도 없으니 너무 신경쓰지 말어라.” 하실때는 정말 가슴 벅참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유세장에 머리수 채우는것이 선거지원 하는것인양 팔짱끼고 주변을 서성이던 지역의 우리당 식구들도 파릇파릇한 20대에서부터 이마에 주름살이 두세 줄 그어진 50대의 중년(박무님을 지칭하는것인데 사실 액면상 나이가 많아 보입니다....ㅋㅋ)까지 어울려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참여라는것이 무엇인가를 느낀분들이 많았더랬죠.
각설하고 저는 지금도 내가 40대 후반을 넘어섰을 때 저렇게 열정적일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긍정 보다는 부정이 더 큰 듯합니다. 그렇기에 그런 열정을 늘 품고 사시는 박무님을 인간적으로 존경합니다.
그 이후에도 수차례 오프에서 박무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한번도 나이나 연륜을 내세워 뒤로 한발짝 물러나 관망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적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해야 할 일에는 앞서 계셨고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론가가 보다는 실천가가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저는 추천합니다.
냉철한 판단과 이론에 그치지 않고 실천할 줄 아는 기호1번 박무 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