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어(敬語)체로 표현하지 않음을 널리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답답한 마음을 독백하는 수준으로 봐주시기를...
방향성을 상실한 채 1219까지 가야하는 현 상황에 대해 나 역시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
공교롭게도 나만이 고민에 함몰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요사이 지인들의 전화를 받다보면 지금의 고민에서 하루빨리 헤어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절실히 느낀다.
공교로운 일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생각을 한다. 이것이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운명적인 메시지일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객관적인 정보가 아니다. 설명할 수 없는 감각과 느낌이다.
주관적인 관점의 질서를 강요하려는 분위기가 오히려 마음을 경직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는 짐작과는 다른 일들이 짐작보다 훨씬 많이 일어난다. 짐작보다 훨씬 많이 일어나는 이 부조리한 합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유시민 후보가 사퇴하기 전까지 나는 바넘효과(Barnum Effect)에 빠져 전율을 느끼며 행복해 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정치적 카타르시스를 충만하게 느껴봤다.
하지만 통합신당은 결과만을 중시한 채 개혁지향적인 정당을 열망하는 국민들을 우롱했다. 한나라, 통합신당, 민노당 모두 ‘박정희’ 패러다임의 부산물이다. 산업화 vs 민주화, 독재 vs 반독재 그 전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 과정에서 답습해온 구태정치가 온전히 판을 쳤다. ‘정치는 생물이다’라는 자기논리에 빠져 ‘신의’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부정과비리’를 당연한 듯 자행을 했다.
대통령직 자체가 정치적 목표였을까. 대통령직이란 불의를 물리치고 정의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는 직분일 뿐이어야 한다. 선거는 세력으로 하지만 정치는 대중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20%대의 지지로 대중의 마음을 얻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대중과의 소통능력을 가진 참된 지성인들의 세력과 대중의 막말 수준에서 굴러다니는 쓰레기 아류들이 몰려있는 세력과는 본질이 다르다.
지금의 통합신당 후보는 이기기 위해 영혼을 팔았다. 영혼이 없는 사람은 ‘가치’를 모른다. 인물중심의 정치세력은 더 이상 정당발전의 동력이 되지를 못한다.
나는 노무현이 아니라 ‘노무현이즘’에 입각하여 바라보려 한다.

‘노무현의 가치’를 부분적이나마 이어가려는 ‘유시민’을 바라보려 한다. 노무현주의의 완성이 진정한 가치있는 정치의 완성이라 단언한다. 이 ‘가치의 완성’을 위해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끝까지 함께 가리란 믿음을 주는 유시민을 바라보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을 했다고 노무현이 끝나지 않는다. 유시민이 대선후보가 아니라고 해서 유시민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조금은 더 자유로운 프레임에서 ‘노무현의 가치’와 ‘유시민의 진정성’은 더욱 확장되고 빛을 더 발하고 확산되어 갈 것이다.
누가 정권을 가져가던 노무현의 정신은 이어질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노무현이즘의 전도사는 <유시민>이 될 것이다. 나는 이 두 사람 이외에는 절대 눈을 돌리지 않을 것이다.
나만의 생각이지만 <무조건>이라는 단어에 <시대정신>과 <진정한 가치>를 부여하고 싶다. 그러한 원칙을 내포하고 있기에 나는 지금도 유시민을 바라기하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지도자는 지지자들이 만드는 것이다.
보통시민들이 열망하는 <어우러짐>과 소통을 담고 있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지도자를 만드는 것이 지지자들의 몫이 아닐까? 내가 무조건 유시민을 지지하는 이유는 그가 <보통사람들의 진정성>을 이해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그의 <언행일치> 때문이다.
‘대통령과의 차별화 전략’으로 노대통령과 참여정부의 가치를 훼손한 <정 후보>의 정치적 노선에 대한 ‘배신감’은 쉽게 해소될 것 같지가 않다. 나의 이러한 견해는 아주 오래도록 나의 정신을 지배할 것이다. <새로운 가치>로 위장한 모순덩어리의 정치모리배들에게 절대 투항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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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나를 몽상가라 부를지 모르지만, 나만 그런건 아니죠.)
- 존 레넌 (John Ono Lennon ), imagine -
" 낡은 세계는 확실하고 구체적이다.우리는 그 세계를 살며 순간순간 그 세계와 싸운다. 그 세계는 존재한다. 미래의 세계는 아직 오지 않았다.환상적이고 유동적이며 꿈이 만들어낸 빛의 천이다. 보랏빛 바람(사랑 , 증오, 상상력, 행운, 신)에 둘러싸인 구름... 이 땅의 아무리 위대한 선지자라도 이제는 암호 이상의 예언을 들려줄 수가 없다. 암호가 모호해 질수록 선지자는 위대한 것이다."
- <그리스 인 조르바> 中 - |
시인 김수영은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라고 탄식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생활정치는 요원해 보이고 내가 찾아가는 집은 점점멀어져 가고 있다." 라고 탄식을 해야 하는가?
개혁의 순수성을 믿는 사람들은 사랑의 순수성을 믿는 사람들만큼이나 순진한사람으로 치부되어 버린다. 어떤 사회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꿈들은 환상과 희망으로 가득 찬 채 형성되기도 하지만, 엥겔스가 지적하듯 "탁월한 싹 내지는 환상의 껍질을박차고 나오는 개혁적 사고" 를 사람들은 내면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역사상 수많은 개혁가들은 이단아로 취급당해 왔으며 언제나 주위로부터 위협을 당했다.
서민들의 삶은 고달프기 그지없지만 분명한 탈출구가 있을 것이고, 언젠가는새로운 세상이 오리라는 믿음과 희망을 언제나 가슴에 품고 있었다. 희망찬 미래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용기는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자들은 항상 이상주의자나 순수주의 자들로 치부되었다.
'소네트'라는 13세기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 되었고, 이후 르네상스시기에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간, 일정한 운율과 형식을 갖춘 14줄짜리 사랑의 시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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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덕한 사람이 거지로 태어나고
형편없는 작자가 화려하게 성장하고
순진한 신의가 불행히 기만당하여
찬란한 명예가 부끄럽게도 잘못 주어지고
...
예술과 학문이 권력에 눌려 벙어리가 되고
바보가 학자인 양 유능한 사람을 지배하고
솔직한 진실이 어리석은 짓으로 오해받고
선한 포로가 악한 적장을 섬기는 |
현실 앞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놀랍게도 400년 전 셰익스피어가 역겨워했던 현실의 고통과 모순은 지금도 우리의 주변에 가득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누구에게서 고단한 삶을 위로 받을 것인가? 시간의 변화와 산다는 것의 슬픔, 죽음의 두려움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그 답은 완전한 사랑에의 복종에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다른 존재를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 이타와의 소통을 위해 노력 하는 것, 상대 앞에서 나를 완전히 낮추는 것, 그리고 마음의 변화에 완전히 순종하는 것, 바로 그런 것임을 말 해주는 게 아닐까? 사랑이란 생각해보면 놀랍도록 신비롭고 아름다운 일이다.
이 넓고 넓은 우주에서 어느 한 순간 어떻게 우리가 만나게 되는지, 어떻게 나에앞서 항상 다른 존재를 먼저 마음에 둘 수 있게 되는지, 그리고 어떤 바람이 불 때, 인간에게서 이토록 선한 천성이 되살아나게 하는지 참으로 신비로울 뿐이다.
삶은 아름답고도 고통스러운 것이다. 세월의 흐름은 제 아무리 젊은 투지와 고귀한 신념으로 빛나던 얼굴이라도 깊은 주름이란 흔적을 남긴다. 세월이 흐르면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 겪은 알 수 없는 분노와 슬픔, 모멸과 절망감을 뒤로 한 채 결국은 돌아가게 된다.
사랑하는 마음은 이 세상의 부조리와 고통을 우리가 견뎌내도록 해 주는 위대한 원천이다. 그러나 고통은 견뎌낼망정 이 사악한 ‘부조리’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용인하고 싶지는 않다. 하여 나는 생각해본다.
"나는 정치적이지 않다"라고 말하는 이들과 "나는 정치적이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그러함을 " 이 또한 정치적일 수 밖에 없다"라고 반론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러면 당신들의 정치적 유토피아는 완성되어 가고 있는가?"
우리들 서로가 상대방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위한 행동보다는 서로가 나누기 위한 행동이 앞서야 되지 않을까? "바꾸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그걸 견뎌라"라는 '세네카'의 격언을 이제는 되뇌이고 싶지가 않다. "눈은 귀보다 더 정확한 증인이다"라는 '헤라클레이토스' 말에 차라리 나의 <오감>을 던지겠다.
유시민의 진정성이 국민들에게 온전히 전이되기 위해서는 대구에서 승리해야 한다. 필히 대구에서의 '승리'가 전제되어야 한다. <시민광장>의 역량이 꽃을 피워야 한다. 대구에서 1800m 활주로 기초공사를 다진 후 4년 후에는 반드시 저 드높은 창공으로 비상(飛上)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여 나는 묵묵히 1/n에 매진 할 것이다.
*뱀발: '체 게바라'와 현재진행형인 21세기 게릴라의 전설 '마르코스'가 생각나는 이유는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