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열풍이 한창이다.
사극은... 참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외면을 받았던 장르다. 뭔가 촌스럽고 목에 힘 잔뜩 주고 눈 부라리면서 말하는 철지난 신파 장르였다. 그게 다시 최신 유행으로 각광받고 있다. 권세와 영화를 가진 역사적 영웅들이 말 한 마디로 천하를 호령하는 모습에 다들 감동에 겨워한다. 찜질방에서 컵라면을 먹으면서 말이다.
얼마전 시내에서 일본 여성들을 보게 되었다. 그녀들을 보니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시내에 가면 관광 온 젊은 일본 여성들을 이따금씩 볼 수 있었는데, 정말 그들에게서 풍기는 분위기는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고급스럽고 미묘하게 부티가 났다. 편안하고 단순한 차림의 일본 여성들에게서도 이 세상 사람과는 다른 느낌의 고급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러나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일본의 젊은 여성들은 전혀 그런 느낌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나는 길에서 마주친 일본 여성들의 촌스러움에 좀 놀랐다. 한국 여성들이 몇년 전에나 입었을 법한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 어린 시절 일본 여성들을 구경거리 삼아 지켜보고 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젊은 여성들의 옷차림은 그 나라의 활력과 민주성을 대변해 주는 면도 있다. 한국 여성들의 세련되고 적극적인 패션은 선진국 사람들이 와서도 깜짝 놀랄 정도이니, 이제 일본의 거리 풍경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그만큼 한국 사회는 민주화되었고 사회의 모든 분야가 개방과 창조로 가득차게 되었다.
나는 사회의 모든 분야, 예컨데 경제 정치 문화 등의 신진대사가 높아지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이 경제활동을 하고 더 많은 사람이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창조적인 일에 종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분야의 견해와 상품과 저작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온갖 것들이 사회의 각개 각소에서 뒤섞이고 전투를 벌이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참 모습인 것이다.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대폭발은 그야말로 사회의 모습을 180도 바꾸어 놓았다.
민주주의는 사회를 훨씬 더 시끄럽게 만들고, 훨씬 더 판단을 복잡하게 만든다. 훨씬 더 많은 정보와 견해, 그리고 훨씬 복잡한 판단과 이해를 요구하는 사회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이런 변모를 모든 사람들이 반기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민주주의의 만개와 성장을 누리고 즐기는 사람들 만큼이나, 이러한 민주주의의 여러 양상을 불편해하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한국사회가 제도상, 명분상의 민주주의는 다른 아시아 국가를 훨씬 앞서고 있지만, 개개인의 일상이나 학교, 가정 조직등의 민주주의는 너무나 요원하다. 한국의 개개인들은 아직도 대부분 토론이나 합의, 설득과 이해 조정은 불편하고 귀찮으며 심지어는 변절이나 개량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국가적, 제도적 민주화에 비해 개인들의 삶이 아직도 전체주의 사회에 머무르다 보니, 사람들은 익숙치 않은 전사회적 민주주의에 피곤함과 반발심을 느끼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인들은 그 어느 곳에서도 민주주의를 교육받지 못한다. 어떤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견해를 내고 서로 합의하고 설득하며 세부적인 조정을 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낀다. 의사결정 과정이 단순하고 일방적일 수록, 많은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고 일이 잘 된다고 느끼며, 조직이나 가정이 잘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놀랍게도 전체주의 시대에 비해 거의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들에게 한국사회가 거치고 있는 지난한 민주주의의 여정은 불필요하고 무능하며, 의미없는 절차일 뿐이다. 왜 지도자가 알아서 결정하고 모든 사람에게 지시를 내리지 않는가? 왜 이리 많은 의견이 난무하며, 아무도 답을 주지 않는가? 하루이틀이면 결정날 일을 왜 이리 몇달을 끌면서 사회가 시끄러운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너무나 많고 그 숫자는 점점 더 늘고 있다.
찜질방에서 김밥을 들고 사극 삼매경에 빠진 이들을 보면서 새삼 느낀다.
사극 속에서 민중은 위대한 영웅들이 부리는 하나의 엑스트라의 역할을 한다. 민중들은 범인을 초월한 역사적 영웅 앞에 순종함으로써 진정한 평화와 행복감을 느낀다. 그들은 더이상 복잡한 정보와 가치 체계와 씨름하지 않고, 초인과 영웅들의 싸움에 참여하는 충성스런 부하가 되는 편이 훨씬 더 행복한 것이다.
아무도 누구보다 낫지 않으며 인간이 인간을 근본적으로 지배할 만한 초월적인 능력은 갖지 않았다는 평범한 사실을, 모든 이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해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야 하며, 이렇게 토론되고 합의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부하나 하인이 아니라 역사와 국가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진심으로 민주주의를 싫어한다.
조선일보가 노무현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가 민주적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민노당을 거의 비판하지 않는데, 민노당은 충분히 비민주적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비민주적이기만 하면, 어떤 것에 대해서도 거의 비판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조선일보와 그의 하수인들은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며, 의사결정을 위해 토론하고 아무 힘도 없는 사람들과 합의해야 하는 복잡하고 귀찮은 과정을 싫어하는 집단이다. 그리고 그것을 싫어하는 모든 사람들을 움직이는 컨트롤 타워인 것이다.
나는 이번 경선에 아무 불만이 없다. 왜냐하면, 이번 경선은 참여정부세력이 패배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비민주적이었기 때문이다. 정동영만 비민주적이었던 것이 아니고, 반한나라, 반정동영 앞에 거추장스런 과정따윈 묻어버리자던 참여정부세력, 소위 친노세력이라는 것들의 모습도 충분히 비민주적이었기 때문에 패배는 전혀 놀라울 것이 없다.
이번 경선은 결국 한국 사회의 오래된 싸움의 재연이다. 바로 "비민주적이기 경쟁"이다. 누가 더 비민주적인가로 경쟁하면 결국 한나라당을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민주 반민주의 최고봉은 한나라당이고 그 한나라당을 이끄는 지도자라면 반민주적인 정도가 보통 사람의 상식과 사고를 훨씬 뛰어넘기 때문일 것이다. 정동영 정도의 반민주, 단일화 강요 수준의 반민주로는 어림도 없다.
반민주세력의 유혹은 달콤하다.
"너희들 이렇게 사회가 복잡하고 가치 판단이 힘든데 지쳤지? 내가 그런거 싹 정리해 줄게. 왜 귀찮게 이렇게 살어? 그냥 내가 판단하고 내가 알아서 일해줄게. 너희들은 날 지지하기만 하면 돼"
민주와 반민주는 항상 우리 사회의 어떤 주제였지만 단일화니 친노세력 결집이니 하는 어처구니 없는 짓거리를 했던 사람들이 정말 민주주의를 알고 있기나 한 걸까? 민주주의란 것이, 어렵고 귀찮은 것이 아니라, 사회를 결속하고 통합하며 보다 이상적인 결론에 이르기 위한 유일하고 최상의 방법인 것을 정말로 믿고 있는 사람들일까? 그들은 민주를 참칭하며 단결을 외쳤지만, 결국 자신들의 반민주성으로 민주를 달성하자는 자가당착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까?
우리는 온갖 종류의 민주주의를 목격해 왔다. 박정희의 우리식 민주주의, 김정일의 인민민주주의, 전두환의 자유민주주의... 모두들 민주주의를 외친다. 불과 몇일 전에도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대동단결, 반민주세력 척결을 위해 일시적 반민주성과 같은 그런 구호들을 보았다.
민주주의는 쵸코파이나 디스담배 만큼이나 흔해빠지고 오래된 구호
나는 이번 경선을 통해 새삼스럽게 우리 사회가 처한 민주주의에 대한 무지, 단지 정치적 수사와 세력 구분선으로 전락한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민주주의에 염증과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민주적 의사결정과정과 민주화된 정치경제사회에 대한 신념과 확고한 의지를 가진 이들이 놀라울만큼 적다는데 새삼 소스라치게 되었다.
우리는 이 시대에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노무현 스타일이 뭐고, 유시민 스타일이 뭐고 하는 얘기가 많았다. 그러나 나는 말하고 싶다. 노무현 스타일 유시민 스타일 따위는 없다. 그들은 가장 단순하고 기초적인 민주주의를 상식적인 방식으로 실쳔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모습에 불쾌감을 표현했다. 우리는 이들을 영웅과 초인으로 묘사하기 보다 이들이 가진 평범한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그들과 공유해야만 한다.
민주주의는 쵸코파이나 디스담배 만큼이나 흔해빠지고 오래된 구호이지만, 민주주의를 진정으로 믿고 신뢰하며 그것을 실천할 의지를 가진 사람은 아찔할 정도로 적다. 시민광장에 모인 많은 시민들은 새삼스럽게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해야만 하는 이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