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시 서울은 모로 가도 가면 되는 것"
" 몇 당에 발 걸쳤든 상관없다. 문어발 중 하나만 끌어다 넣으면 된다"
" 어차피 기계도 사람이 운용하는 것. 덤벼. 모바일이든 뭐든 우린 다 뚫을 수 있어"
" 대통령의 명의까지 도용한 게 뭐 어때서. 어차피 민주신당 경선이 개판임은 세상이 다 알고 있었잖아"
애석하게도 이번 경선에서 얻은 교훈은 이런 것들 뿐이었습니다. 5년 후에도 국민경선을 해야 한다면 이번을 교훈삼아 악랄하게 준비하면 될 것이고, 정당의 존립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이런 경선을 하지 않아야 겠다면 독자적인 우리의 세력을 정당 안에서 키워 당의 당당한 후보를 내세우는 방향을 찾아서 가야겠지요.
우리가 기대했던 2002년의 달콤하고 아름다웠던 국민경선은 재연되지 않았습니다.
리바이벌은 싫다였을까요. 마녀의 저주였을까요. 국민경선이란 포장 안에서 반칙과 불법을 교묘히 오가며 현란한 조직기를 보여 준 정동영 후보 측에게 세상은 승리의 깃발을 안겨 주었습니다. 어쨌든 축하합니다.
두 손 높이 들고 감격의 눈시울을 삼키던 정동영 후보의 모습에서 난 어쩔 수 없이 내가 그 자리에서 꼭 보고 싶었던 사람을 오버랩시켰습니다. 우리에게 최선이었던 바로 그 사람의 얼굴을요. 그러자 가슴이 뭉클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죄송합니다. 난 어제 정동영의 포효와 수락 연설을 들으며 끝내 뜨거운 눈물을 쏟고야 말았습니다.
경선을 치루면서 꿈도, 맹목적 꿈과 체계화해서 추구해야 할 꿈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마음을 세상도 알아 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가 깨어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아직도 지금 저 자리에 선 사람이 우리의 그 사람이었다면 꿈은 계속되고 있을 것이란 아쉬움이 파도처럼 가슴을 때리더군요.
누군가에게 고이 걸었던 꿈과 기대를 정동영은 대신해 줄 수 있을까요.
2007 대선에서 최종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요. 상처뿐인 경선이라도 끝까지 참여를 했으니까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고, 이제라도 스러진 꿈을 정동영의 어깨에 다시 걸어야만 하는데, 그가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인지 확신을 갖기 어렵다는 데 개혁세력의 딜레마가 있는 것 같습니다.
김한길류와의 당권에 대한 밀약이 있었다, 내년 총선의 30%는 최고위원회에서 전략공천을 할 수 있다, 중도지역에 있던 의원들이 정쪽으로 줄서기한 것은 총선 공천에 대한 계산 때문이다. 이런 끔찍한 기사를 보는 것이 괴롭습니다. 그래 이겼으니까 다 가져가. 가져가되 제대로만 해 준다면 얼마나 좋겠니. 아! 5년만에 물거품이 된 정당개혁의 꿈이여.
진 자는 말이 없다지만 반칙으로 후보를 뽑고 당의 대표얼굴로 대선에 내보내게 된 현실에 대해서도 함구해야 한다는 것이 고통입니다. 사분오열된 후보단일화는 무슨 동력으로 할 것이며, 대선에서 양대 세력의 대결구도는 가능할 것인지, 87년처럼 흩어져 결국 정권을 넘겨주고 마는 것은 아닌지 지금은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을 아껴야 하나 봅니다.
어쨌든 이번 경선에서 배운 것은 분명히 있습니다.
민주신당이 깨지지 않는다면 5년후의 국민경선을 대비해 넉넉한 시간을 두고 튼실하게 우리의 조직을 갖추어 나가면 될 것이고, 정당원들을 대표하는 후보체제로 전환될 수 있음을 대비해야 한다면 이제야말로 제대로된 정당을 만들어 준비해 나가면 되니까요.
양쪽을 다 준비하며 간다 하더라도 5년은 모자람 없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물론 당장 당을 깨고 나와야 한다. 이런 어리석은 말이 아닙니다. 민주신당과 그대로 갈 수도 있고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갈림길에 설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에겐 명분이 중요한 것이니까요.
막감정에 아무렇게나 어설피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어쩔 수 없는 예외도 있었지만 우리의 행동기준은 항상 대의였고 앞으로도 대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어디로 가야 하는지 지금 미리 고민할 필요는 없을 지도 모릅니다. 제대로 가면 좋고 거꾸로 가면 회초리를 들면 되겠죠.
경선 결과가 민주개혁을 잇는 정통성에 혼선을 던져 우울하고 답답하지만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희망이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2007년에 무성하게 핀 악의 꽃들이 언제까지 만발할 지 지켜 보겠습니다. 다시는 무참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기억의 비망록에 차곡차곡 담아두겠습니다.
유티즌 여러분, 경선기간 내내 고생하셨고 여기 계신 한분 한분이 너무도 소중합니다.
닥쳐 올 세찬 비바람에 흩어지지 않도록 손에 손잡고 끝까지 가십시다. 지금은 한치 앞도 안보이는 안개 속이지만 언젠가는 맑게 걷히지 않겠어요. 원칙과 상식, 바름과 정의, 깨끗한 정치가 승리하는 그날까지 다시 또 악랄하게 뚜벅뚜벅 걸어갑시다.